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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 Dec 07. 2023

네, 며느리가 되자마자 시부모님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허업..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죠? 

네, 사실 굉장히 힘겹고 어려웠습니다.


사실 결혼 바로 직전까지도 저는 결혼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는지라, 정말 아무런 관심이나 관련 정보도 하나 없었습니다. 누가 어떤 시댁을 만나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떻게 시부모님과 싸워서 쟁취해 내고(?) 이런 이야기들이 주변에 넘쳐나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아 아무런 감정 없이 지나친 덕분이었죠. 한때 '며느리 용 가짜 깁스'가 명절 때마다 기사를 타고 바이럴 되어도, 그런 시댁은 나의 삶에는 없을 것이다(?)로 콧웃음 치며 가볍게 넘어가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찐으로 아무것도 몰랐나 봅니다.

친한 친구 P와 함께 맛집 웨이팅을 걸어 넣고 송리단길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걸어 다니는 중이었습니다.


"P야, 나 결혼할 것 같아."

"어....???? 뭐라고????"

"아, 그리고 나 집 정리하고 남편 있는 XX로 내려갈 듯.."

"야 이 XX년아!!!!!!!!!"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옆에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아무리 뜯어말려도,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을 한순간에 싹 정리하고 남편과 시부모님이 있는 지방으로 이사가는 것을 별 고민 없이 쉽게 결정했습니다. 이미 남편이 시부모님과 함께 일하고 있었던지라 나도 같이 합류하게 되는 것에도, 신혼집이 시부모님 집과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여도, 정말 일말의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렇게 콩깍지가 씌여있었거나 남편한테 아주 미쳐서(?) 이성을 잃은 상태도 아니었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저는 진정으로 아는 것 하나 없이 그저 무지했던 거죠. 제 머릿속은 무지개가 가득하고 별이 반짝반짝한 그런 꽃밭이었고, '새로운 곳으로 이사? 너무 좋아!!!'라든가 '새로운 가족!? 재밌겠잖아?!!' 정도의 유치원생보다 더한 단순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있었습니다. (찐 머가리꽃밭..)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유효기간은 정말 딱 3개월이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미 이렇게 모든 걸 내던졌기에 쉽사리 번복하기 어려우며, 특히나 어느 누구의 강요 없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내 마음속에서 부정하고 회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괜찮다, 시부모님 너무너무 좋으신 분들이다'라며 화내시는 친정엄마를 설득한 것도 제 자신이었으니까요. 나 스스로에게 실망하기 싫었고, 또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몸으로 뛰어들어(?) 부딪혀가며 직접 체험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또 고민할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조금만 인사이트가 있었어도 그걸 간접경험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한국의 평범한 시부모님과 며느리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갑을의 관계가 아직 흔한 듯 합니다.

시부모님이 정말 깨어있으신 분들이 아니라면, 며느리는 그저 아들의 안위를 위해 식사도 챙기고 집안일도 살뜰히 하는, 제사나 가족모임이 있으면 자연히 부르지 않아도 와서 부지런히 도와야 하는 그런 존재일 겁니다.

딸 같은 며느리가 없다는 건 너무 유명하죠. 사위가 처가에서는 백년손님인 것에 비해, 며느리는 손님 혹은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이 아직까지는 만연한 것 같습니다.


근데 거기에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까지 얹혀진다면? 

당신을 갑을병정 중에서도 정, 그것도 쌉호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자, 그럼 여기서 아래 문항을 잘 살펴봅시다. 


첫째인가요? 네

책임감이 큰 편인가요? 네

몸이 빠르고 바지런한 편인가요? 네

기본적인 집안일을 잘하도록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받았나요? 네

어릴 때부터 엄마아빠가 시키는 일은 귀찮아도 최대한 하는 편인가요? 네

남들이 하지 않는 귀찮은 일도 최대한 솔선수범 하는 편인가요? 네

싫은 소리 크게 안 하고 넘어가는 일이 잦은가요? 네

별일 없으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습관이 있나요? 네

상대방에게 화내거나 말하기 전까지 몇 번의 기회를 주나요? 네

어른들에겐 그래도 기본적으로 예의 바르게 대하려고 하나요? 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요? 네

사회적인 위치나 입장 차이에 따른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는 편인가요? 네

최대한 매너 있고 깔끔한 관계를 좋아하나요? 네

다른 사람들의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나요? 네

인간관계에서 존중과 배려를 중요시 여기는 편인가요? 네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들어주나요? 네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고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가요? 네


‘네’가 다섯 개 이상일 경우 당신은 호구가 될 가능성이 5배 높아집니다. 

10개 이상일 경우 10배가 아닌 100배입니다! 


자, 그럼 또 다른 문항들도 연달아 살펴볼까요?


시댁에서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먹거나 외식을 선호하는 편인가요? 아니오

남편이나 그 형제&자매 중 시어머니의 밥 준비를 돕는 멤버가 있나요? 아니오

시아버지가 집안일 혹은 설거지를 하시나요? 아니오

시어머니를 도와주는 가족 멤버가 있나요? 아니오

설거지를 하는데 뺏어서 못하게 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집에선 절대 손 까딱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나요? 아니오

아들들한테 명절 때나 가족모임 때 준비를 도와달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오

명절 때나 가족모임 때 며느리가 준비를 돕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고 부탁하신 적이 있나요? 아니오

시어머니가 '딸'이 아닌 '손님'이라고 언급하거나 부른 적이 있나요? 아니오

'더 있다 가지 그래' 대신 '신혼인데 얼른 집에 빨리 가'라고 보낸 적이 있나요? 아니오

아들이 삼시세끼를 뭘 어떻게 먹는지 궁금해하지 않으신 적이 있나요? 아니오

아들에 관한 정보와 질문들을 며느리가 아닌 아들한테 직접 연락해서 물어보시나요? 아니오


윗 문항에서 ‘네’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면, 멀리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것입니다.




결혼이 왜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지, 퇴근 직후 깜깜한 방 침대에 쓰러져 멍 때리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내가 남편까지 돌보게 될까 봐.

지금도 내 부모님이 어렵고 힘든데, 남편의 부모님까지 더해지면 어려운 상황이 두 배가 될까 봐.

부모님 생일부터 결혼기념일, 명절, 제사 등등. 이런 가족 대소사를 내가 주도적으로 챙겨야 할까 봐.

아기를 낳으라는 압박을 2배, 4배로 받을까 봐.



맞아... 내가 맞았어. 

결혼하면 이렇게 될 줄 알았거든. 

그래서 내가 결혼 안 하려고 했던 거야…. 


(땡. 결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니가 너무 아무 생각 없었고 너의 대처방식이 안일했다 이거야)



휴.. 그러게 내가 말렸잖아 이 미친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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