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이 된 계기
중, 고등학생 때부터 장래희망을 가지고 그와 맞는 전문성이 있는 대학을 찾아 진학하고, 그 꿈을 잃지 않고 장래희망을 이룬 사람이 사실 주변에 몇 명이나 될까?
학창 시절 주변에 소위 ‘공부 잘한다’라는 친구들을 보면 우린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은데,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 수도권 대학에 가고,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 활동에 가입해서 인맥을 쌓고, 대기업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참가하여 상을 받으며 스펙을 쌓고, 학업 준비에도 바쁠 텐데 해외 어학연수에, 봉사활동까지 다녀가며 무수한 경력 쌓아 이력서를 채웠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이력은 보잘것없었다. 내신도 좋지 않았을뿐더러, 수능점수도 낮아, 지방의 대학도 겨우겨우 입학하였고, 학비와 용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로 대학시절 흔한 오티, 엠티 한번 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전념하느라 심신이 지친 이십 대 초반의 나를 달랠 수 있는 건 봉사활동이었고,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행복하다고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 4년을 숨 가쁘게 달려왔고, 어느 날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교수님의 추천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선발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었지만, 선발이 되어도 비용 때문에 걱정이었지만, 이것 만큼은 나 자신을 위해서 시간과 비용을 쓰고 싶었고 이것만큼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었다. 한 달간 필기, 실기 면접을 준비하고 면접 당일 잔뜩 긴장한 체로 면접을 보았고, 일주일 뒤 합격 통보를 받았다. 너무 기뻐서 울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무언가에 열중하고 해냈다는 성취감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고, 물론 그 후 비용 문제가 두통을 가져다 줄 거란 걸 한참을 운 후에 알았지만, 합격 순간만큼은 희열을 느꼈다.
어렵사리 비용 문제를 부모님과 논의하고 해결하여 6개월 후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큰 땅덩어리에서 서로 생긴 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언어, 문화, 관념, 역사가 다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부딪혀 가며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혔다. 또한 같은 학급에 유럽, 미주, 등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도 있어서, 그들과 함께한 1년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1년은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데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큰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가 되었는데,
그게 바로 크루즈였다.
내가 묵었던 기숙사 방 맞은편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온 라비니아(Lavinia)가 살고 있었는데 나이가 나보다 10살 많은 언니였지만, 동갑내기 친구처럼 자주 어울려 놀았으며, 둘 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로 둘이서 학교 뒷문에 있는 커피숍에 놀러 가서 공부도 하고 했던 사이였다. 공부하다가 지루해지려고 하면 서로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동네인 한국, 부산과 관련된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라비니아는 이탈리아, 로마에 관한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해주었었는데, 평소처럼 그날도 라비니아와 커피숍에서 사진첩을 보고 웃고 떠들고 놀던 중 우연히 그녀의 사진첩 속에서 큰 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무심코 이게 무슨 배냐고 물었더니, MSC 크루즈라고 했다. 당시 크루즈라는 단어도 생소했으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 여객선이었다. 그러나 내 인상 중에 여객선은 부산에서 자주 보던 훼리였고, 사진 속의 여객선은 훼리보다는 훨씬 크고 화려해 보였다. 게다가 라비니아를 통해 들은 크루즈라는 선박은 들으면 들을수록 단순한 여객선이 아니라, 여행지 그 자체였으며, 선박 안에서 먹고, 자고 뿐만 아니라 쇼도 보고, 여러 재미있는 프로그램들도 있어서 같이 즐길 수 있고, 더 구다나 한번 타면 일주일, 한 달 내내 배안에서 생활하며 여행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 나에게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이 세상에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공간이 배 안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배가 전 세계를 향해 운항을 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동시에 내가 보고 자란 세상은 너무나도 작구나라는 걸 그때 당시 깨닫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 준비를 하여야 할 때쯤, 4년 동안 쉬지 않고 해왔던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을 바탕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봉사하고 사는 직업이 내 적성과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젖어있었던 크루즈라는 판타지가 더해져 난 크루즈 승무원이 되어야만 했다! 어쩜 마음만큼은 이미 "크루즈 승무원"이었다.
크루즈 승무원으로 입사하는 경로는 에이전시를 통하거나, 직접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준비할 당시 2009년에는 크루즈에 관한 정보도 거의 없었고 더 구다나 크루즈 승무원이 된다고 하는 건 더 신기한 일이었으니 크루즈 회사 입사 정보를 찾는다는 게 어렵기도 했고, 주변에 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없었으며,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오로지 인터넷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크루즈, 크루즈 산업을 먼저 이해하여야 했고, 입사 준비에 앞서 세계에 있는 크루즈 회사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카니발 코퍼레이션, 코스타,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프린세스, MSC, 스타 크루즈 등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크루즈 회사는 많았고, 한 회사당 적게는 3척 많게는 20척 이상의 크루즈선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 크루즈들은 일 년 내내 쉬는 날도 없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항해하고 있었다.
각 회사를 파악하기 위해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회사 규모나 채용경로를 파악하는데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 한 달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신나는 한 달이었고, 미지의 세계를 보게 된 충격의 시간이자 동시에 모험의 시간이었다.
매일 5시간씩 자기 전 검색을 하였는데,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고,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섬 이름, 부두 이름들을 검색하면서 마치 내가 콜럼버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처음 접하는 크루즈라는 세계에, 평소 영어로 검색도 잘 안 하는 터라, 매일 영문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눌러보고, 동영상도 보고, 사진도 다운로드하며 매번 발견하는 신기한 세상을 보며 지금껏 25년간 보고 자랐던 공간은 정말 1%도 안 되는 세상이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바다는 늘 가까이 보고 자랐고, 선박, 해양레저 등 해양과 관련된 산업에 익숙해 있었지만, 홈페이지에서 설명하는 8만 톤, 13만 톤이라는 배의 톤수를 보고도 저게 얼마나 큰지 가늠도 못했었다. 그러다 총 탑승객 수가 800명, 2500명, 4000명이나 된다는 정보를 보고는 설마설마 설마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저렇게 큰 배에서 나도 일원이 되어 근무한다는 상상을 하니 신나기도 하고, 또 덜컥 겁도 나기도 했다.
저렇게 큰 배가 좌초되면 어쩌지, 불이 나면 어쩌지 등등 배안의 안전이 걱정되기 시작하면서, 과거 선박 사고와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기도 했고, 그러다 무서워져서 잠시 크루즈 관련 정보검색을 그만두기도 했다.
며칠 뒤, 꿈에서 크루즈 승무원이 된 꿈을 꾸고 나면, 다시 그리워져, 크루즈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화려한 크루즈 동영상, 그 속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승객들, 미소를 띠며 일하는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면 또 흥분을 멈추지 못하고 다시 승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한 달여의 시간에 걸쳐 여러 크루즈 회사를 검색하였고 그 후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을 선택했다. 이유는 바로 한 크루즈 선박을 보고 난 뒤였는데, 그 배가 바로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의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Oasis of the seas)’였다.
2009년 10월에 처녀 운항을 할 계획으로 22만 5282톤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 선박으로서 총 탑승객 636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크루즈였다. 당시 선박이 건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 동영상을 보고,
'꼭 저 크루즈에 타고 싶다! 꼭 저기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 후 입사 경로를 알아보았지만, 경로를 찾긴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이탈리아 친구 라비니아에게 입사 경로를 물어봤었지만, 그 친구의 답은,
“You just can apply it onwebsite. 그냥 온라인으로 지원하면 돼”였다.
너무나 쉽지 말하는 바람에 정말 그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나의 검색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결국에 찾지를 못하던 와중, 한국 홈페이지에서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한국인 승무원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대행 채용사를 통해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일정 기간 동안 소양 교육을 받았는데, 영어수업, 안전교육, 인터뷰 준비 등 짜인 수업 프로그램에 따라 준비를 했다. 입사 후 알게 된 정보이지만, 온라인으로 직접 지원을 할 수 있었고, 당시에는 안보인 링크가 왜 지금은 보이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러나 온라인 지원은 비용이 들진 않지만, 오로지 본인의 능력에 의존해야 하고, 공채가 아닌, 수시이기 때문에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누군가가 팔로우업을 해주지 않으니, 본인의 지원 상태가 궁금할 때마다 직접 온라인으로 문의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시간이 꽤 걸리기에 '언젠가는 연락 오겠지'라는 대인배와 같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나처럼 국내에 채용대행사를 통해 지원을 하는 경우는 소정의 비용이 요구될 수 있으나 입사하고자 하는 곳의 채용방식, 스타일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곳이며, 채용소식에 관해 궁금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서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두 가지 방법 모두 장, 단점이 있으니 잘 찾아보고 본인에게 맞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한 달간 입사하고 싶은 크루즈 회사를 조사하고, 석 달 넘게 크루즈 승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한 후, 10개월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나의 드림 직장, 크루즈에 승선을 하였다.
크루즈 승무원 합격 통지를 받은 후, 작은 체구에 승무원과 어울리는 이미지가 아녔기에, 더더욱 주위에서 사람들은
"네가 승무원이 된다고?"
"크루즈 승무원은 키 안 봐?"
"어떻게 승무원이 될 생각을 했어?"
"대단하다"
"어렸을 적에 해외를 많이 다녔겠구나"
"영어를 엄청 잘하겠다."
등의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물론 앞으로 하나하나 자세히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겠지만, 나 역시도 승무원이 되고 나서 스스로 신기해했던 사람이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지도 않았고, 부끄러운 토익점수, 작은 키, 지방대 출신, 한국에서 1차 면접 기회도 가져보지 못했고,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르바이트를 멈출 수 없었던 학생이었지만,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며,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라는 신념 하나로 준비해서,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의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승무원이 된 후에도, 3년간 크루즈에서 7개의 다른 포지션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으며, 현재는 아시아 지부(상하이 위치)에서 유일한 지상직 한국인으로 아직도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왜냐?
"세상은 아직도 관대하고 아직도 못잡은 기회가 어디에나 있기에"
* 덧붙이는 글
전 세계에 10개 넘는 크루즈 회사가 있고, 40개가 넘는 크루즈 라인이 있다. 크루즈 라인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회사당 여러 개의 크루즈 라인(브랜드)을 가지고 있는데, 각 라인마다 고객 타깃층, 톤수, 스타일, 항로 등이 다르다. 그중 10곳의 크루즈 라인들을 알파벳 순서로 나열해 보았다. 각 회사별 정보는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찾아볼 수 있다.
아자마라 클럽 크루즈 (Azamara Club Cruises) https://www.azamaraclubcruises.com/
카니발 크루즈(Canival) https://www.carnival.com/
코스타 크루즈(Costa) http://www.costacruise.com/
셀러브리티 크루즈(Celebrity Cruises) http://www.celebritycruises.com/
디즈니 크루즈 라인(Disney Cruise Line) https://disneycruise.disney.go.com/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Holland America Line) http://www.hollandamerica.com/
노르웨지언 크루즈 라인(Norwegian Cruise Line) https://www.ncl.com/
프린세스 크루즈(Princess Cruises) https://www.ncl.com/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Royal Caribbean International) https://www.royalcaribbe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