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살이에 대한 중년 이혼남의 소회(所懷)
이제 다음 달이면 이혼한 지도 어느덧 1년의 시간이 된다. 이혼을 할 때는 전처와 그 집안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하고 치를 떨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런 나의 감정들도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나를 찾아오는 현타는 잔잔해지려고 하는 내 마음속에 큰 바위를 던지곤 한다.
내가 갑자기 이런 생각(현타)을 하는 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문득 생각이 나면서 날 괴롭히던 생각들이 있는데, 문제는 그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내 마음과 머릿속 어느 곳에 선가 남아서 불시에 날 괴롭힌다는 것이다. 어제가 그런 날 중에 하루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청소를 했다. 원룸이지만 열심히 쓸고 닦고 하면서, 깨끗한 방을 보면서 내 기분도 한층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면서 현타가 온 것이... 갑자기 6평도 안 되는 방을 청소하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젠 4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전처 공부 시킨다고 내 이름으로 된 집도 한 채 없고, 남들처럼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닌 정말 가진 것 이룬 것 하나 없는 중년의 초라한 아저씨가 내가 사는 원룸 화장실 거울에 비쳤을 때, 난 정말 그 유리를 깨버리고 싶었다. 너무 서글퍼서 눈물이 났다(진짜 울었다는 건 안 비밀). 20대와 30대 때는 해외를 무대로 일을 하면서, 멋지게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고, 그 꿈을 위해 착실하게 준비해 왔었는데, 이젠 6평 남짓한 방을 청소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친 것인지 정말 모르겠고, 내가 처한 이 불합리한 현실이 너무나 화가 났다. "내가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 술 등을 해서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일하면서 아내 공부 뒷바라지 다 해주고, 해외에서 공부 마칠 때까지 기다려줬는데, 내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는지 모르겠다!"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 결혼을 고민하거나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가지 조언 아닌 경험담을 공유할까 싶다.
상대를 배려해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라
길지 않지만, 지금까지 삶을 살면서 다양한 이성을 만났고, 그중 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까지 했다. 그리고, 결혼 이후, 이혼한 지금까지의 경험을 봤을 때, 결혼하는 상대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상대에 대한 배려"다. 배려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중심에는 "상대를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 전제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만약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그 관계는 깨어지거나 서로가 서로를 상처 주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린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배려의 힘을 요즘에서야 크게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이혼을 하고, 전처의 가스라이팅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난 후, 지금도 그 부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나 혼자 힘으로 낮아진 자존감에 대한 문제를 이겨낼 수는 없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나 또한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 이혼 후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일어서려고 노력했지만, 가스라이팅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에 대한 깨어진 신뢰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깨어져 버린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로 다른 이들과 만나더라도, 난 언제나 불안했다. 상대에게 실수할까 무섭고, 그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리고, 완벽하게 일을 수행하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되면, 또 상대와 다툼이 일어날 것이고, 이 다툼으로 인해 여태껏 쌓아온 관계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 두려워했다. 이런 나의 행동의 많은 부분이 바로 전처의 가스라이팅에 의해 만들어진 내 모습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가스라이팅의 영향에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한 사람과의 인연에 의해서였다. 바로 소개팅을 했던 그 사람(A)... 여러 이유로 소개팅 상대와 연인관계가 되지는 못했지만, 서로 좋은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유달리 배려심이 많은 그 친구 덕분에 나를 옭아매던 부정적인 생각들에서 점점 자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발견은, "나의 행동과 생각들이 잘 못된 게 아닌,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상대를 대하면서 하는 행동과 표현 등이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고, 만약 틀렸다 해도 그게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가하는 언행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것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러지 못했다. 잠을 잘 때,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야만 했던 나. 아침엔 불면증 때문에 늦게잔 아내가 깰까 조심하면서, 인근 카페에서 아내가 깰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나. 아내가 무언가 부탁을 하면,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 괴로워하는 아내를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완벽하게 하려 했던 나. 조금만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면, 매몰차게 다그치거나 힘들어하는 아내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도 편하게 못 하던 나... 이 외에도 내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정상이라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사실은 비정상적인 것들이었다는 걸 이혼하고 나서도 깨닫지 못하다, A를 만나서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전처가 남을 위한 배려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행동은 언제나 옳지만, 상대의 행동은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틀리다는 생각을 가졌던 전처는 내가 앞서 말한 배려의 미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대였다. 배려는 아주 작은 행동일 수 있지만, 결혼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각한다. 내가 A를 만나면서 가장 먼저 변화된 것은 바로 내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난 내가 하는 말은 다 시덥지 않고, 어이없고 멍청한 소리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아끼고 대화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A와 대화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판단을 받는다는 생각이 사라지면서, 점점 편하게 말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기 시작했다.
지금 누군가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러면, 상대가 얼마나 배려심이 많은지 확인하시는걸 강력히 권장한다. 그리고, 만약 상대가 일반적은 배려의 마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관계는 행복하지 못한 관계로 갈 확률이 높으니, 결혼을 고민한다면 신중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