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일자가 참 느린 듯 빠른 것 같다. 처음 법원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는, 시간이 꽤 오래 남은 듯 느껴졌는데, 이제 한 달이 남은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정말 긴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정말 바로 코 앞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곧 나의 고민과 고통이 끝이 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정말 "이혼을 하면 고민과 고통이 끝나는 걸까?" 하는 의구심도 들기 시작했다. 이혼하면, 나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걸까? 이혼을 하면, 그걸로 끝이 나는 건 아니다. 공적인 서류에도, 나의 기록은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왠지 이혼하고 나면, 그 기록이 나에게 주홍글씨가 되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진다.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나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에 대해 실망하지는 않을까?
이혼도 하지 않고, 사람도 없으면서 벌써 주제넘는 이런 고민을 한다. 그거 외에도, 회사에도 나의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회사에서도 알게 되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에 너무 두렵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다시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후회한다.
왜 이렇게 남에게 퍼 주기만 하고, 실속은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지 말이다.
어려서부터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난 사람들을 싫어했다. 사람들과 가까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친해지려 다가오면, 그 사람을 내 삶에서 밀어냈고, 냉정하게 대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만약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되면, 처음 반응은 "도망"이었다. 처음엔 나도 호감이 있어 다가가지만, 어느 정도 관계가 깊어지려 하면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그 관계에서 도망쳐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주위에서 욕도 많이 먹었고 오해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안에 완전히 들어오면, 그다음엔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난 완전히 바보(호구)가 되어버렸다. 그냥 다 퍼주고, 맹목적으로 그 사람을 믿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와 친해져서 마음을 열면, 내가 퍼주다 손해보고 후회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번 결혼도 그렇게 끝이 나버린 것이다.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방어적인 내가 결혼을 했다는 것은 그 상대를 위해 모든 걸 내놓을 수 있는 각오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다툼의 연속이었지만, 그녀의 부모를 내가 직접 설득하고, 내가 한국에 남아서 유학생활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살아갔다. 이때, 그녀에게 들어간 돈은 서울은 아니어도, 경기도 외곽이나 지방에서 집을 한 채를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을 썼다. 아내의 공부를 위해, 집을 포기하고, 나의 안정된 삶도 포기했다. 3평 남짓한 사택에서 살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살았으며, 16년이 넘은 차를 탔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아내가 대학원만 졸업하면, 아내도 나의 노력을 이해하고,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한국에 입국하고 난 후, 일 년의 시간은 나에게 지옥보다 더 한 고통을 선사했고, 결국에는 이혼 통보와 함께 나 혼자만 한국에 남겨두고 해외에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나 자신의 실수에 대해 후회를 했다. 이게 처음도 아니지만, 그리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호구처럼 다 퍼주고, 손해를 보고 난 후에 후회를 한다. 후회를 하지만, 또 같은 일이 발생한다.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주위에서 "바보처럼 퍼주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내가 나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고, 자기 환멸로 사람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괴로워하던 중 내가 왜 호구처럼 살아가는지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호구의 삶을 사는 이유와 호구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