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큰 사랑
밖에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내 눈을 잡은 간판이 있었다. Book Pub… 북카페는 많이 봤지만, Book pub는 처음이었다. 혼자 들어가기가 망설여졌지만, 용기를 내어, 그곳에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여느 Pub나 카페와는 확연히 달랐다. 문을 열자, 잔잔한 음악소리와 함께, 익숙한 책 내음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나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빈자리에 앉아서, 와인과 치즈를 주문했다. 그리고, 책을 한 권 선택하여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제목은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였다.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이혼에 지쳐서 더 이상 의욕이 없이 폐인처럼 지내던 때가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기대 없이 책을 가져와 첫 페이지를 펼치고, 왈칵 눈물이 났다.
지나치게 밝거나
지나치게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잘해야 된다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잘 참거나
지나치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아이일 때부터 환경이
어른처럼 스스로 많은 것을 해냈어야 했고
그래서 실수하면 안 돼서
잘하려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해 스스로 힘듭니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너답게 편하게 있어도 돼”
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은 눈물이 날지 모릅니다.
“너답게 편하게 있어도 돼”
(출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
책에서 이글이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너답게 편하게 있어도 돼”사실 난 이 말이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의 실패로 자신을 탓하고, 후회하고 사는 나에게 누군가가 이런 위로의 말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특히 난 "괜찮다"라는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너무나도 그리운 나의 아버지에게 말이다.
아버지는 날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사랑의 표현이 매우 서툴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분께서도 내리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러시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대로 사랑을 표현하셨지만, 난 그 사랑을 몰랐다. 너무 엄하게 느껴지고, 무서웠다. 아버지가 미웠다. 어렸을 때 기억하는 아버지는 내가 잘못하면 괜찮다 말씀을 해주시는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잘못에 대해 나무라는 아버지가 있었고, 난 그런 아버지가 너무 미웠었다.
다행히, 내가 성인이 되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아버지와 관계가 많이 회복되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친구와 같은 관계까지 가까워지고 나서 몇 년 후,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의 사랑을 내 가슴속에서 심장이 저려올 만큼 느끼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내 아버지도 사람을 매우 좋아하던 분이셨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사업을 하시는 분이시다 보니, 집에 늦게 오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어떤 때는 아버지가 친구분들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 술을 마시는 경우도 많았고, 난 그런 아버지의 심부름을 어려서부터 다녔다. 사실 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즐거워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는 분들에게 질투가 났다. 그분들이 나보다 더 많이 아버지의 관심을 가져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드시던 아버지 친구분들이 술이 거나하게 되시면, 나를 불러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는 참 좋것당게~ 느그 아부지가 니를 얼마나 이야기 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너는 몰라 불것지~ 이~ 니는 이런 좋은 아부지 둔 걸 겁나게 행운이라고 생각해부러야 한당께~~ 하하하
난 이 분들이 날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친구분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이 더 싫어졌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친구들이 좋아서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밖에서 거래처 분들이나 친구분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밖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했고,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지는 만큼,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어머니를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거래처 분들이나 친구분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한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외박을 하신 적이 없다.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셔도 당일날 집에 몇 시가 되어도 오셨고, 술을 아무리 늦게 마셔도 꼭 집에 와서 잠을 주무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난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고,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에 스며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깨닫지 못했던 그 사랑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이혼을 준비하면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아내와 이혼 문제로 힘들 때, 제일 보고 싶은 게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이 문제를 특유의 친화력과 호탕한 웃음으로 아내의 부모랑 아내의 마음을 돌렸을꺼란 생각을 여러번 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도,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누구보다 먼저 행동을 하셨다. 상대가 누구이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상대와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셨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걸 무서워하지 않았고, 항상 내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셨던 분이셨다. 우리 가족에게는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은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 가족에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면, 해결사 역할을 해 주셨던 분이었다. 그리고, 이혼을 준비하면서, 난 이런 "해결사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위로를 듣고 싶다... 내가 언제나 낙심하고 있으면, 옆에서 호탕하게 말씀해주시던 아버지의 한마디를 듣고 싶다...
아따~ 써글놈이~ 사내자식이 되 가꼬~ 괜찮응께~ 다 괜찮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