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5] 이혼하러 갑니다

개꿈 (Weird Dream)

by 나저씨

꿈을 꿨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왠지 모를 후회의 감정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훨씬 더 잘 이해하면서 살 수 있을 것만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노력할걸 이라는 생각이 들고 후회의 감정이 들었지만, 정확히 무엇이 후회되는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아침을 맞이 했다.




외부 출장이 있어 아침 일찍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내가 출장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미국에 살고 있는 멘토로부터 전화가 왔다. 며칠 전이 내 생일이었기 때문에, 생일 축하를 하려고 연락했나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전했다. 물론 내가 안녕하지 않다는 건 그도 잘 안다. 내가 이혼을 하는 것도, 나에게 이혼을 하라고 먼저 조언을 해 준 것도 그였고, 내가 이혼의 절차를 따라갈 때 내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 준 사람이 멘토이기 때문이다. 생일 축하 인사와 안부인사를 나누고 나서, 그는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잘 읽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의 링크를 보내줬는데, 벌써 내 글들을 읽었나 보다.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쓴 것보다, 더 날것의 감정과 괴로움, 분노와 복수심 등을 봤던 그에게 내가 쓴 글은 왠지 일기장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부끄럼움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멘토는 내가 이곳에서 쓰고 있는 글들을 칭찬해줬다. 의아한 마음이 들어서, 난 무슨 소리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줬다.


글을 읽어보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혼을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말야.




그렇다. 난 지금까지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해서, 상처받을까 봐 사람들에게 감정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게다가, 해외에서 어렸을 때 유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환경 때문에, 더더욱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감정을 보이는 건 약한 것으로 보여졌고, 약한 자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날 지켜주기도 했지만, 날 불행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것을 이혼을 통해 깨달았다.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서, 이혼이라는 나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내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듯한 때도 있었지만, 나의 감정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홀로서기에 대한 준비가 시작된 것이었다.




멘토와 수다를 떨다 내 꿈 얘기를 했다. 후회의 감정이 느껴지는데, 어떤 후회인지 몰라서 뒷 맛이 개운하지 않다고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멘토는 "한쪽만 노력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라며 따끔히 나를 혼냈다. 그리고, 내가 겪은 그 감정은 내가 이혼과 그에 따른 감정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지 않는 한, 계속될 거라고 말이다. 분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지금 아내와의 문제는 이혼이 아니고는 해결 되지 않는다. 다시 살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마음이 떠나고 가정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 없는 아내와는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와의 이혼준비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도 많았다.


그 중, 하나는 나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혼과는 상관없이, 나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내와 결혼한 이후, 내 삶은 흑백영화와 같은 무채색이었다. 결혼과 함께, 내 인생 목표가 아내에 의해 사라지고, 오직 아내의 인생 목표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만 살면서, 내 삶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삶이었다. 마치 소리가 들리지 않는 흑백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아내와 별거를 하고 나서, 나의 삶은 무채색 무성영화에서 UHD급 총 천연색 컬러의 히어로 영화만큼 다이내믹하고, 다채로워졌다.




무채색의 내 삶에 컬러를 넣은 첫 번째는 바로 그림이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지만, 그림 그릴 줄을 몰랐던 내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선 하나 긋는 것도 어려웠지만, 점점 내가 그린 그림의 형태를 인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가장 큰 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일차원적으로 바라보던 세상이 그림을 그리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서, 무채색인 내 삶에 조금씩 색깔이 덧칠해지고 있었다.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불행(고통)을 직시하고 싸우기 시작하니, 나의 삶에 활기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