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되면 정답이 되는 게 인생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던 시절을 보냈던 나는 인생에는 모범답안이 있다고 생각했다. 10대에는 학교에 다니고, 20대에는 대학에 가고,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60대에 퇴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려서 부터, 단 한 번도 나의 생각에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아왔다. 30대 까지는 문제없이 잘 살아왔다. 계획대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내 삶에 특이점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바로 이혼. 이혼을 하면서,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인생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것이다. 이혼과 함께, 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우울증이나 자기 연민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그런 노력을 3년 가까이하고 있다.
미술 선생 공방에 함께 계시는 작가님이 개인전을 여셨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여는 개인전이라 나도 그분의 개인전을 축하드리기 위해, 갤러리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분의 지인분들을 여럿 만나는 기회가 생겼다. 서로 가볍게 인사와 자기소개를 하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 한 분이 나에게 질문을 했고, 난 3년 약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미술 수업을 매주 꾸준히 수강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작가님은 매우 놀라워하면서,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그림 수업을 받았냐며 놀라워하셨다. 그 말씀을 하신 작가님은 나를 경이로워하는 눈빛으로 보셨고, 난 그 관심이 불편했다. 그분의 관심이 불편한 게 아니라, 열심히 그림 공부를 한 나의 동기가 그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림에 대한 열정과 같은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과 이혼을 겪으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방황하던 나에게 미술 공부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미술 공부를 했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쳤지만,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다. 하지만, 그 작가님께 나의 민낯을 보여줄 용기가 없던 나는 그저 "자존감 올리기" 프로젝트였다 라며 에둘러서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준 건 아니었다.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나의 인생 모범답안을 벗어난 내가 인생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문제라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술수업을 하면서,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예술가 분들과 친분을 쌓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예술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으며, 나 또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보려는 시도를 해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객관식이라 생각했던 삶에서 주관식의 삶을 알아내고 나서, 내 삶이 조금은 더 여유로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