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도 젊은이가 될 수 있다
친한 멘토에게 젊은이의 어원을 들은 적이 있다. 젊은이란 "저를 묻는 이" 즉, 자기 자신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했다. 그 말은 내가 끊임없이 나에 대해 물어보면, 난 젊은이인 것이다. 10대에는 아무런 꿈이 없었다. 그저 대학에 가는 것이 내 목표였고, 대학에 가면 내 인생에 모든 것들은 알아서 흘러가고 난 행복한 삶을 살거라 생각했다. 20대에는 꿈을 좇았다. 꿈이 없었고, 그렇기에 꿈을 찾아 쫓아갔다.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근사한 꿈을 찾으려 노력했다. 30대에는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좇아서 세상에 나아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세상을 바꾸는 삶"에 한 발자국 남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난 그 한 발자국을 나아가지 못하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발자국을 나아가려는 그 순간,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 스스로 내 앞에 있던 사다리를 발로 차 버렸다. 물론 후회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 앞의 그 꿈 보다, 새로 찾은 꿈이 더 밝게 비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찾은 꿈이 너무 밝은 나머지 눈이 멀어 버렸고, 그렇게 발을 헛디뎌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떨어진 바닥은 너무나도 아팠다. 게다가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쿠션도 없어서, 모든 충격을 내 몸으로 온전히 다 받아들여야 했다.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에서 누워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바보 같은 나의 선택에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렇게, 난 나이 들어갔고, 초라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젊은이"라는 단어가 기억이 났다. "저를 묻는 이". 난 내가 더 이상 젊은이가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에게 꿈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멘토에게 전화가 왔다. 다시 질문을 하고 움직이라고. 무섭고 두려워서 그의 말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말을 거부할수록 내 안에서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젊은이가 되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를 묻고 아픔과 실패의 경험으로 성숙해진 40대의 젊은이가 되어보기로... 그리고, 40대의 꿈을 찾아보기로... 급하지 않게 천천히 찾아가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