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2] 이혼하러 갑니다

나와 아내의 대화 2

by 나저씨

지원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낙방을 한 이유에 대해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오빠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또 대충 준비한거지... 내가 오빠한테 부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빠에게 부탁했는데,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해주고 말이야... 내가 기대를 말았어야지...

그녀의 대답은 예상했던 반응이었지만, 역시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애써 상처받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내에게 대답했다.


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어. 그런데도 불합격이 된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 최소한 내가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는 건 좀 인정해줄 수 없겠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악을 했다. 그러자, 아내는 날 쳐다봤다.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눈빛으로. 바로 누군가 자신보다 한참 부족한 누군가를 경멸하듯이 쳐다보는 그런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기대는 하지도 않았어. 하지만, 최선을 다 했다고? 최선을 다 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날 봐! 난 해외에서 내 힘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비자까지 받았어. 그런데, 오빠는 고작 이 제안서 지원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해서, 떨어졌잖아. 이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 기회였는지 알아? 오빠와 내가 해외에 함께 나갈 수 있는 기회였고, 그 기회를 오빠가 차 버린거야.

아내는 나의 약점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 부분을 교묘하게 잘 파고들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나의 약점인 책임감과 남들보다 높은 호구력을 지닌 나의 성향을 이용하여 공격을 했다.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자마자 난 힘이 쭉 빠졌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진짜 내 잘못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왜 내가 꼼꼼치 못해서 이런 일을 만들어 냈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훗날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자면, 아내가 이룬 일들은 내가 전적으로 한국에서 정신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해줘서, 비자발급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그 기반이 있었기에 아내의 능력과 함께 나의 서포트가 시너지가 되어 된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없었으면 그 모든 일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난 그걸 깨닫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내는 단 한번도 한국에 와서도 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이런 성향은 우리 결혼 생활에서 거의 모든 일에 다 적용된 부분이었다. 나는 항상 부족하고, 실수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기 관리도 하지 못하고, 한 마디로 0점짜리 남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항변을 했다. 아내가 외국에 있을 때도, 처가의 모든 대소사에 참석하였고, 장인/장모가 아내에 대해 남편 고생시킨다 나무랄까바, 한 달에 최소 2번은 처가에 올라갔다. 그래서, 장모가 교회를 가는데 운전도 해 드리고, 장인은 안마를 해 드리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며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내는 시댁, 즉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게는 단 한통의 전화도 하지 않았다. 왜 하지 않았냐고?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냐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때 했던 아내가 나에게 했던 대화를 최대한 기억을 살려 적어보겠다.


오빠. 내가 얼마나 예민한지 잘 알지? 그리고, 이 공부가 나에게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어른들에게 연락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알지? 그래서 말인데, 나 공부하는 동안, 어머님한테 연락하라고 강요하지 말아 줄래? 내가 공부 마치고 와서, 진짜 지금까지 못 했던 것까지 다 합쳐서 잘해줄게. 부탁할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걸 잘 안다. 하지만, 난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왜냐고? 그때, 이미 난 그녀에게 어느정도 세뇌가 된 상황이고, 나 또한 아내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은 생각만 했다. 즉,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난


지금 내 가정이 더 중요하니까, 아내가 약속한 것도 있고 하니, 아내를 믿자. 이 고비만 넘어가면 다 괜찮아질 거야


라고 내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그렇게, 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나 자신을 속이면서 깨어진 관계를 이끌어 가려 노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