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결혼이란...
내가 생각하는 한국에서의 결혼은 두 명 인격체가 만나서 하나가 되는 것을 넘어서 가족과 가족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아무리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라 해도, 두 명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게 사실이다. 나도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오고, 항상 집안 대소사를 친척들과 함께 참석하고, 가족 간의 교류가 활발했던 나에게 아내뿐만 아니라 아내의 부모님을 내 부모님처럼 대하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 중요했다. 이 말은 반대로, 내 어머니가 아내로부터 챙김 받는다면, 난 아내에게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예상하다시피, 아내는 단 한 번도 내 어머니를 집안 어른으로 대우한 적이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거지야? 우리가 돼지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식하게 음식을 주는 거야?
아내가 나에게 신혼초에 했던 이야기다. 신혼초에 내가 어머니를 뵈러 고향집에 내려갔다. 참고로, 우리 집은 아버지는 다른 분들보다 조금 일찍 천국에 가셔서 어머니만 남아있다. 내가 결혼하기 1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된 것까지 보고 가셨으니, 크게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태어나서 평생을 시골에서 사셨던 분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은 적게 먹더라도 남에게 베풀 때는 누구보다 손이 크신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가을에 밤을 많이 쪄서 내가 올라가는 나에게 줬다. 나에겐 너무 익숙한 일상이라 난 어머니가 준 밤을 받았고, 그 밤을 아내의 부모에게 줬다. 그런데, 그게 양이 많았었던 것 같다. 제대로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이 상해서 버리게 된 아내의 어머니는 아내에게 짜증을 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는 나에게 짜증을 냈고 말이다. 난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게 내가 혼나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 또한 가정문화가 다른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집에서 음식을 받아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아내가 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음식을 그리 많이 주냐라며 다음부턴 음식을 그렇게 많이씩 주지 말라고 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왜 그런 소리를 듣고도 나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으셨냐고! 그러자 어머니가 나에게 한 말은 나에 말문을 막아버렸다.
너랑 그 애가 행복하게만 산다면 난 그보다 더한 이야기도 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아내랑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해서 이야기 안 했던 거야.
아내는 결혼기간 동안 내가 태어나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에 두 번 내려갔다. 그게 전부였다. 기독교였던 그녀는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이해를 하지 못 했고, 제사음식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에 대해서 무언가 옳지 않은 것을 본 것처럼 우리 가족을 쳐다봤다. 물론 나도 기독교이지만, 아내의 그런 행동은 이해를 하지 못 했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서, 내 어머니가 제사를 지내는데, 절을 하라 강요한 것도 아니고, 명절 전 붙이는 것도 아내 힘들어할까 봐 대부분을 미리 해 두셨던 분이셨기에, 우리 집에서는 아내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내의 입장도 들어봐야겠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이 상황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사람에게 전화하는 거 정말 힘들어하는 거 알지? 나 신경 쓰면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거 알지? 내가 오빠 어머니한테 전화하는 걸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잘 알지? 그러니까, 내가 공부하는 동안엔 그런 걸로 나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라 오빠. 부탁할게
일전에도 이야기했던 아내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나에게 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난 아내의 이야기에 알았다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화를 내고 그렇게는 못하겠다 해봤자, 우리는 또 싸우기만 할 것이고, 결론적으로 아내는 내 어머니께 전화는 하지 않고, 나와 싸움만 하게 되었다고 우리 가족을 미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양가의 대소사에 꼭 참석했다. 아내가 자리에 없다고 집안의 대소사에 참석 안 해서 아내가 욕을 먹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또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양가 대소사에 혼자 참석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없었다. (마음 한편에는 아내가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내 어머니에게도 잘해주길 바랬고, 아내의 아버지와 아내의 관계도 회복되길 바랬다.)
하지만, 아내는 해외에서 귀국했을 때도, 자가 격리하는데 힘들다고 내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화하지 않았고, 귀국하고 일주일 후에 내가 화를 내니까 마지못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게 나의 어머니에게 걸었던 마지막 전화였다. 참 재미있게도, 아내는 한국에서 나에게 이야기했던 것이 있음에도, 외국에서 살고 있을 때, 자신의 부모에게는 자주 연락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자신의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 가족이고, 내 어머니는 남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중 내가 가장 마음에 상처를 받은 일은, 그녀가 대학원 졸업을 했을 때였다. 그녀는 자신의 졸업 사진을 나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난 졸업한 걸 내 어머니한테도 전화하는 게 어떻겠냐 이야기했고, 예상한 데로 아내는 부담스럽다며 연락하는 것을 피했다. 어차피 물어볼 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아내의 답변을 듣고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졸업 사실에 대해서 아내의 부모와 동생에게는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축하를 받고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속 좁게도) 나는 그 사실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생활비며 학비며, 내가 지원해줬는데... 그리고, 내 어머니는 아내가 유학 가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내나 그 가족에게 싫은 소리를 하신 적이 없는데, 왜 나와 어머니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점점 난 아내에게 마음을 닫게 되었고,
부부간의 삶이 어떤 건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