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서 남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부부로 지내다 이혼하고 싱글이 된 삶을 산 지 이제 2년을 바라본다. 연말이 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요즘 전처 꿈을 많이 꾼다. 왠지 잠에서 깨면 기분도 좋지 않지만, 몸도 찌뿌둥하다. 하지만 기분이 마냥 나쁘지는 않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아련한 기분이 든다. 무엇에 대한 아련함인지 모르겠지만, 꿈에서 상대를 보고 있으면 후회나 분노의 감정이 아닌 아련함의 감정이 든다.
전처를 꿈에서 보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하늘을 보면서 전처 얼굴을 기억해 내려한다. 그런데 전처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기보다, 얼굴 윤곽이랑 머리 스타일 등은 실루엣처럼 기억이 나는데, 전 처의 눈, 코, 입 등을 생각하려 하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길에서 스쳐 지나가도 못 알아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전 처의 부모나 동생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전처의 얼굴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이런 게 선택적 기억상실이 아닌가 싶다. 이혼을 한 지 2년이 지나가지만, 여전히 난 전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아마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 토요일엔 미술 선생님과 그 지인들과 함께 송년회 겸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미술 선생님에게 벌써 3년 가까이 미술 수업을 받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식사는 정말 즐거웠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많은 자극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수다를 떨다 갑자기 신년운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재미로 핸드폰으로 점을 봤다.
나도 호기심에 점을 봤는데, 내 인생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것들이 나왔다. 첫 번째로 나에게는 역마살이 5개가 있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역마살이 많은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고, 나도 그 이야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지금까지 내 삶을 돌아보면,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국내외적으로 출장도 많이 다녔다. 결혼 전에도 그랬고, 결혼과 이혼 후에도 난 정말 많은 곳에 돌아다녔다. 재미있는 건 내 업무 환경을 보면 외부로 다닐 일이 없는데, 유달리 나는 일을 하면서도 밖으로 자주 나갔다.
두 번째로 내 인생에는 굴곡이 많다는 해석이 나왔다. 인생이 굴곡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나도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 했다는 건 부인하지 못했다. 내가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 IMF가 터져서 집에서 지원이 거의 없다시피 공부를 하였고, 유학 기간 동안에 비자 갱신을 위해 한국을 온 것 외엔 집에 10년 가까이 가질 못 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한국에 와서 일을 잡았고, 회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살던 삶과 너무 다른 회사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고, 주위에선 날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항상 회사 내에서 외부 장기 파견을 가야 하는 업무나 의전 출장 등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살다 결혼을 했는데, 제대로 된 결혼 생활도 못 해보고 이혼을 했다. 이혼을 했을 때, 나에게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이혼하고 내 수중에 있던 건, 전처의 부모가 사용하다 준 2006년형 SUV 한대가 전부였다. 이 차도 폐차를 시키고 싶었지만, 차가 없으면 회사를 다니지 못하는 데다, 돈이 없어서 지금까지 그 차를 타고 다닌다. 그리고 올해 징계위원회까지 받은 걸 보면, 정말 다양한 인생굴곡을 보낸 건 맞는 것 같았다.
세 번째 해석은 내 인생에 '귀인'이 촘촘하게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 해석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귀인이 있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내 인생에 정말 많은 귀인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 돈이 없는데도 주위의 도움으로 살아가면서 학교를 마칠 수 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여러 가지 위기 상황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혼 후, 만난 미술 선생님과 그 지인들인 작가님들...... 이 분들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귀인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난 이미 내 삶의 목적을 잃은 채, 우울증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혼 후에 나에게 관심을 줬던 많은 친구들과 브런치 독자님들....... 나에게는 정말 많은 귀인이 있었던 것이 맞았다.
사실 난 점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점집에 가서 점을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에 재미로 본 점을 맹신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번 일을 통해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은 귀인들이 있는지를 깨달았고, 내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이혼이 나에게 준 상처들은 절대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흉터로 남을 것이고, 난 나 자신을 볼 때마다 항상 그 흉터를 볼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부끄럽고 괴로워할 것이다. 다른 이들을 만나지 않고 도망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끄러운 흉터를 가진 나를 좋아해 주고, 받아주고 사랑해 주고 도와주는 귀인이 내 인생 곳곳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 이상 인생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앞으로 내 삶을 더 즐겁게 희망차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