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까미노] El Camino de Santiago

순례자의 길을 걸어보자!

by 나저씨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새해가 되었으니 으레 그렇듯 신년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다 문득 내 나이를 셈해보게 되었다. 이제는 '만 나이'가 법정 표준이 되었으니 49살이라 우길 수 있지만, 2026년은 원래대로라면 내가 50살이 되는 해다. 앞자리 수가 4에서 5로 바뀌는 해. (아직은 49살이라며 정신 승리를 하고 있지만).


내년, 진짜 앞자리 수가 바뀔 때 내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가 있었다.


"순례자의 길!" (엘 까미노 데 산티아고 El Camino de Santiago, 약칭 '엘 까미노')


30대 초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으며 막연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어느 순간 그 꿈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에 순례길을 걸을 만한 극적인 터닝 포인트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혼을 하고, 그 아픔을 극복하며 개인전을 열고 책을 출간하기도 하며, 내 인생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그 거친 흐름이 이제 나를 순례자의 길로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행동에 옮겼다. AI에게 순례자의 길에 대해 물어봤고,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에 압도되었다. 찾아보기 전까진 몰랐는데, 순례길에도 여러 루트가 있었다. 전체 코스를 다 걷는 루트가 있는가 하면, 일부만 걷는 루트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는 나로서는 당연히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일부만 걷는 루트를 알아봤다.


AI(제미나이)에게 단기 루트에 대해 문의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순례자에게 '순례 증서'가 발급되는데, 최소 100km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길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스페인 길',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등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 '스페인 길'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요즘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으니, 현장에서도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AI가 추천해 준 루트는 "사리아(Sarria)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총 115km의 거리였다. 원래 일주일 정도 걸을 계획을 잡고 있었으니, 루트 자체는 나의 상황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트를 정한 뒤 언제 걸을지를 알아봤다. AI는 5월과 9월을 추천했고, 나는 비가 내릴 확률이 적은 9월을 택했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2027년 9월, 순례자의 길 걷기 프로젝트'이다.


내가 그 길을 걸으려고 하는 건, 30대 때 꿈꿨던 것처럼 인생의 거창한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나이가 50살이 되어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 내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인생 후반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조용히 생각해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길 위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인생의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무엇일지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기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시작했다.


이제 결심을 했으니, 50살의 내가 무탈하게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해봐야겠다.


Buen Camino


쉼(나저씨가 쓰다)



나저씨가 수노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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