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은 끝이 아니라 방향일지도 모른다
이혼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였다. 그 다음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였다. 주위 지인들은 시간이 약이라며,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감정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었다.
명절이 되면 괜히 고향 집에 가서 머무르기 싫었다. 가족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공간에 내가 자연스럽게 서 있을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내가 어디쯤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건지 이미 지나가버린 장면들을 자꾸 되감게 되었다. 후회라고 말하기엔 늦었고, 인정하기엔 아직 아쉬움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요즘은 또 다른 두려움이 생겼다. 어머니가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고, 나는 병원 복도에서 대기 의자에 앉아 이 나이에 ‘혼자’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마저 떠나시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되는 걸까?
중년에 혼자가 된다는 건 20~30대 젊을 때의 고독과는 다른 결이 있었다. 이혼 후 내가 보내야할 시간은 여전히 길어 보였고, 그 시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무서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인생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캘리를 배우고, 스페인어를 배우고, 책을 냈고, 작은 개인전도 열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 나이에 새로운 걸 시작해서 뭐 하냐”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괜히 튀지 말라고 스스로를 나무랐을 것이다.
하지만 상실 이후의 나는 예전의 기준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 삶이 점점 좁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그게 정답인지, 지금도 확신은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상실이 내 삶을 끝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방향을 묻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가? 퇴직(또는 60살) 이후의 30년을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싶은가? 그 질문들이 쌓이면서 한 번쯤은 사람들과 나누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마음을 적자면,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런 자리를 내가 열어도 되는지도 아직은 조금 조심스럽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지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해보려 한다. 상실 이후의 삶을 조금은 다르게 설계해본 사람으로서,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로서. 거창한 강연은 아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도 없다. 다만 한 번쯤 “나는 앞으로 어떻게 걸을 것인가”를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혹시 지금 멈춰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한 번 방향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고 싶다. 나는 아직도 걷는 중이다. 빠르지는 않지만, 멈추지는 않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