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7] 이혼하러 갑니다

부정-[분노]-공포-흥정-수용

by 나저씨


이혼에 대한 부정의 단계를 지나면서, 마음의 의지가 꺽이고, 분노의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화가 났다.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배신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진짜, 믿었던 사람에게 뒤에서 칼을 찔린 기분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분한 기분이 들고, 내가 당하는 이 부당한 처우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불면증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분노한 것은 내 개인적으로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우리 부부는 평범한 부부와는 조금 다른 생활을 했다. 아내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하고, 우등생으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까지는 부모님의 기대를 부응하면서 살아가며, 그분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의 인생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건, 그녀가 아버지의 바람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화를 냈고, 그녀가 바라는 커리어를 응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집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었고, 그러던 중에 나를 만났다. 나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의지를 관철시킨 적이 있어서, 아내의 싸움이 얼마나 외로운 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녀의 외로운 싸움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고, 옆에서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먼저, 아내가 커리어를 쌓을 수 있도록 유학을 지원해줬다. 아내가 한국에서 유학 준비를 하고, 학원을 다니면서, 해외에 인터뷰를 가는 비용까지 모든 비용을 지원했다. 그리고, 아내가 해외의 유명 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을 때, 난 그녀의 생활비와 학비 등을 전적으로 지원해 줬다. 나 또한 20대 때, IMF로 힘들게 타향 땅에서 학교생활을 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내가 먼 타지에서 고생하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 그렇게, 난 매달 적지않은 돈을 그녀의 유학생활 동안 지원했다. 사실 유학생활뿐만 아니라, 그 전에도 아내는 제대로 된 일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생활 기간 동안 경제적인 책임을 오롯이 나 혼자 다 부담하면서 생활했다. 그리고, 아내의 공부를 위해 아이를 갖는 것도 미루고 기다려줬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난 아내를 믿었고, 아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우리 부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생각했다. (참... 지금이라면, 뒤통수를 세게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라고 하고 싶은 시간이다)




마침내 아내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해외에서도 스스로 돈을 벌며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상황이 급속도로 바뀐 것이다. 아내는 해외에 가서 살기를 희망하였으며, 자신의 가치관이 나와 맞지 않는다며, 같이 살면 서로가 불행해지니 이혼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난 아내가 학업을 마치고 나면, 가정에 충실하며 나와도 정착하고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부정의 단계에선 아내의 요구사항에 대해 현실 부정을 하며, "아내가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바랄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 틀렸고,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하자, 정말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의 감정이 내 안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생각 같아서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숴버리고 싶고, 아내의 부모와 아내에게 가서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화가 났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딸만 애지중지 하는 처가를 보고 배신감으로 인한 가슴의 상처를 받았던 시간을 보냈다.




이때, 난 아내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까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변호사를 만나서 상담도 해보고, 이미 이혼을 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도 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소송으로 가면, 내가 손해 볼 것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애초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자산도 없기 때문에 이혼을 해도 재산분할 등에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소송을 하면, 직장을 다니고 있는 내가 더 불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때, 나의 분노는 정점에 치달았던 것 같다.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그 배신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이 두 가지 감정이 만나니, 정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아내의 가스 라이팅에 의한 결과물이었음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