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지금 여기
누가 물었다. 최근 어떻게 지냈냐는 말. 나는 돌이켜본다. 분명 무언가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렸던 듯한데, 아무 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모두 휘발되었다. 나는 무엇에 그토록 괴로워했던가. 무엇이 나의 내부에 들끓어서 비정상적으로 긴 산책을 했던가. 불현듯 게걸스럽게 치킨을 뜯었던가. 적의에 가득 차 위스키를 들이부었던가.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내 머릿속은 완벽히 텅 비어 버렸고, 나는 그 확신에 황홀함을 느낀다.
기억을 신뢰하지 않을 때마다 나는 존재하였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일어나는 일뿐. 그 외 아무것도 없다. 미래를 예상하는 일이 잦을수록 정신은 늙는다.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갈망하면서부터 시간은 지옥이 된다. 느릿느릿하고 지루한 나태의 늪. 몸부림칠수록 더 빨리 가라앉는 일분일초의 흐리멍덩한 세계에서 감각은 퇴화된다. 피곤한 일이다. 삶을 생각하고 상상한다는 건 순간을 폐기시킨다. 그렇게 인간은 비겁해진다.
왜냐하면 상상이라는 작동의 발원은 무의식에 있다. 고로 미래가 나를 장악한다는 건 내 통제를 벗어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의 나를 상상하고 저녁이 되면 내일의 나를 상상한다. 다음, 또 다음. 그다음에 벌어질 일을 상상한다. 그리고 사실처럼 믿는다. 조심스러워진다. 그 공포가 행위를 제어한다. 문득 다 지겨워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이 시궁창 속으로 들어간다. 그 미래 어딘가에 있을 그가 지금의 나를 수시로 호령한다. 그는 온갖 희망과 절망을 지저분하게 남발하고 무책임하게 사라진다. 그 후에는 결국 살아있지만 생기가 없는 낯빛만 남는다. 나는 이 굴레에서 아직 못 벗어났다. 그러므로 아마 한 생 내내 순간을 향유하는 시도를 계속할 듯하다.
가능한 만큼 미래의 장악에서 분리돼 다시 지금의 나에게로, 이 순간으로 향하는 눈을 가진다. 앞으로 경험하고 실행할 무언가를, 해야 할 일로부터 다가오는 고통을 세세히 느끼지 않는 살결을 가진다. 미래의 기분을 상상하지 않는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를 모른다. 끝끝내 모른다. 헛것을 거두고 산다. 숨을 길게 쉰다. 눈앞에 무언가 있다. 손을 뻗는다. 한 발자국을 뗀다. 사라진다. 다시 존재한다. 그다음 일은,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