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인천공항
스페인 사람들이 개와 고양이에게 몹시 친절하기 때문에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우리집 고양이는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고양이는 길에서 잘 안보여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테러에 대한 위협때문인지
동물 질병 검역 뿐 아니라 케이지도 검사했는데
충격흡수용으로 깔아놓은 담요도 들춰서 확인해 봐야 한다면서
시끄럽고 사람많고 문도 활짝 열려있는 공간에서 고양이를 꺼내 안으라고 했다.
3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놀란 고양이가 뛰쳐나갈까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드디어 고양이를 실어보내고 긴장이 풀린 나를
공항 직원이 안내해줬는데
알고보니 검역소 직원 남자랑 헤어진지 얼마 안 된 사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그녀의 연애사를 들어줬고
그녀의 전남친이 잘못했으면서 불쌍한 표정을 하며 그녀를 쳐다보는 게 짜증났단 것과
그녀는 다 필요없고 내 인생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공감해 줬다.
(딱 봐도 20대 초반 같았는데 그러다가 다시 사귈 것 같다는 말은 눈치있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짧은 연애상담의 대가로
그녀는 나를 조금 일찍 들어갈 수 있게 조치해 줬다.
여기까진 정말 모든 게 부드럽게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침 11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내 고양이는 아직도 모스코에 혼자 남아있었다.
나는 항공사에 전화를 걸고 또 걸었지만
인포메이션 센터와 사무실을 찾아가도 응답하는 사람이 없어 방법은 없었다.
드디어 오후 4시가 다 되가던 무렵,
사무실 전화에서 응답이 왔고 나는 사무실에 직접 찾아가서 고양이의 행방을 물었다.
처음 한국직원과 얘기를 하다가
러시아 매니저랑 얘기를 하는데
나는 내가 그렇게 영어를 빨리 말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죄송합니다만, 규정에 없습니다.
짐이긴 하지만 스페셜한 짐이겠죠
그것 때문에 추가요금도 낸 거잖아요.
택시를 타고 드디어 인천 제2 공항으로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
나도 퇴근한 직원에게 자꾸 전화하기 싫었지만
항공사가 고양이를 러시아에 두고 왔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짜증이 있는대로 난 듯한 직원과 통화하며
12시가 넘으면 고양이를 넘겨줄 수 없다는 말에
(시간은 거의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드믄드믄 서 있는 직원분께 큰 소리로
"여기 동물 검역소는 어딘가요!"
하고 물었고
그 분은 다급한 나의 표정과 이미 뛰고 있는 발걸음에
간결하고 큰소리로 안내해 주셨다.
"감사합니다아아."
멀어지는 나의 인사를 뒤로하고
12시를 사수하기 위한 한밤의 질주는 나름대로 필사적인 속도로 진행되었다.
*
내가 붙였던 행선지를 적은 종이, 덕지 덕지 붙어있는 테이프와 케이블타이로 가득한 케이지.
그리고 잔뜩 긴장한 우리 고양이까지.
그래도 내가 부르니
"애옹."
하는 작은 소리로 바로 답해주는 걸 보니 이녀석도 어지간히 고생했구나 싶었다.
나는 꼼꼼한 직원을 만나 한참이나 서류와 티켓을 뒤적이는 통에 숨이 넘어갈 뻔 했지만
다행히 시간 안에 인천공항 근처에 미리 잡아놓은 숙소로 고양이를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케이지를 열고 간식과 물을 챙기며
새로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잘 먹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앞으로 전쟁이나 이민을 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너 비행기 타는 일은 없을 거야."
라고 혼자 눈물 젖은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렇게 국제 미아가 될 뻔한 나의 고양이와
하루종일 진땀을 뺀 나의 하루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덧, 아직 인천으로 전주까지 또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