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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영화 속, 서툰 사람들의 이야기

[Episode #48] 너도 '유지태 감독'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 위치한 미니시네마의 카페 'Cowalk'


 너비조아의 마흔 여덟 번째 상영회가 있었던 지난 토요일 오후. 매서웠던 추위가 조금 사그러들었던 날, 우리는 양재의 한 카페로 모였습니다. 너비조아가 함께 했던 48번의 상영회 중 단편영화를 상영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는데요. 이번 상영회의 주제는 바로 '유지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로만 알고 있는 유지태, 그는 배우임과 동시에 4편의 단편과 1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영화감독인데요. 그가 카메라를 들고 바라본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안락한 공간에 모여 그가 만든 단편영화 세편을 함께 보고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좋아하는 단편영화를 추천하고 함께 나눠볼 수 있도록 마련했던 판넬







<초대>

: 초대(Invitation, 10분, 2009)  - 현대인의 소통부재에 관한 단상. 물질만능주의에 휩싸인 현대인의 모습, 인터넷이라는 도구로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한 영화



"영화라고 하면 계속해서 연속적인 장면이 이어지기 마련인데, 사진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스탑모션 기법을 쓴게 신선했어요. 이런 영화를 본적 없어서요. 현대인들이 사람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겪는 어려움이나 내면적인 고민들을 표현해낸게 공감이 많이 됐어요"


"영화 화면은 계속 끊기는 것처럼 이어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레이션으로 처리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 엄지원배우와 유지태배우가 만났을 때, 이전에 계속 끊기던 장면이 잠시 자연스럽게 연결되던 부분이 흥미로웠고 기억에 남아요."


"단 5분도 채우지 못하고 다음 사람을 찾는 여인의 모습에서 현대의 인간 관계, 특히 가벼운 관계의 연속이 펼쳐지는 요즘의 만남들이 생각났어요."


"여인의 독백을 보면,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자기 직장 사람들 다 없애버리고 싶다고 하고.. (웃음) 집단 속에서 겉으로는 잘 섞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속으로는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찾는 것 처럼 그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좀 나아질 수 있을까요."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How Does The Blind Dream, 40분, 2005) - 평온과 고요에 지루해하는 장님. 침술사인 그에게 어느 날 한 여인이 손님으로 방문하고 그녀가 쏟아내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농담들은 장님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시각장애인의 생활과 정신세계를 사실적인 묘사와 뮤지컬을 모티브로 한 판타지 사이를 오가며 그린 영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많지 않은데, 시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시각에서 보이는 것들을 열감지 카메라 같은 색감으로 표현해 낸 것이 독특했던 것 같아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요. 영화 처음에 그의 어머니가 '너는 보이는 것이 없으니 하루하루가 평온할 것이다' 라고 한 대사가 나오는데, 전혀 그렇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그들의 세계에서 들리고 보이는 것 역시 나름대로 치열할것이고…. 그렇게 치부되어서는 안 될 삶들인 것 같아요. 실제로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선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적인 꿈을 꿀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단편영화를 볼 때마다, '현대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축약해서 만들어내고, 그 표현방식들이 독특하다고 생각해서요. 이 영화 역시 그랬어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계속해서 장님인 오광록에게 '쌈바'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건네잖아요. 정열적이고 자유로운 춤이라고 하면서. 그래서 그도 나름대로 쌈바에 대해서 상상하고, 그 자유로움에 대해 열망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너가려다가 차에 치이는 장면은, 결국에 그 자유에게로 가닿지 못하는 한계를 표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주인공이 왜이렇게 계속 쌈바에 대해 말을 하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도 자유나 정열같은 것에 목말라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친구는 자신을 전혀 인격체로서 이해하지 않는 듯 하고,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 그는 시각장애인이고 …."



<자전거 소년>

: 자전거소년 (The Bike Boy, 40분, 2003) - 소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전거 연습을 하는 순진한 소년의 이야기. 사춘기 소년은 어느 날부터 소녀에게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소녀또한 소년에 대한 애정을 마치 마치 안 그런 것처럼 표현한다. 



"저때와 같은 어린시절이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니고, 또 저는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왜 이렇게 제 얘기 같고 그리워지는지 모르겠어요.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동경일까요."


"여운을 길게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컷들의 호흡이 긴 것 같았어요. 풍경을 담아내는 방식도 아름다웠고, 쓸데없이(?) 달달한 BGM까지. 개인적으로 유지태감독의 영화라고 생각 했을 때 상상했던 감성과 가장 비슷한 영화였던 것 같아요."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주위를 맴돌고, 또 마음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가고. 서툴지만 순수한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어요. 중간중간 어머니나 할머니가 등장할 때 웃긴 부분도 참 많았고요."


"저 마을 아이들은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누가 가르쳐준적도 없었을테니. 어찌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서툰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정말 사랑의 첫 모습은 저렇지 않을까요."



영화가 끝난 후, 함께 모여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짧지만 긴 여운, 단편영화만의 매력


세 편의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세 편 모두 색깔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국 '관계에 서툰 사람들'에 대한 통찰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들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쁘고 삭막한 현실 속에 갇힌 현대인, 내면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것이 처음인 사춘기 아이들까지. 비단 영화 속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 영화들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번외편으로 모두 함께 짤막한 '나만의 단편영화 시놉시스' 를 써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시놉시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로. <너의 파편>, <이불킥>, <고민상담>, <너보다는>, <너의 이름은> 등을 제목으로 한 재치있고 매력적인 시놉시스들이 출품되었습니다 :) 각자가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에 대해 알아볼 수도 있었고, 화려한 연출이 없더라도 하고픈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단편영화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동감>의 지인, <봄날은 간다>의 상우, <올드보이>의 우진. 배우로서의 모습만 알고 있었던 이전과 달리, 그의 세계를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아 흥미로웠던 시간. 네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최근에는 <마이 라띠마> 라는 장편영화까지 연출하는 등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유지태. 그가 만든 영화를 봄으로써 더욱 쉽게 단편영화에 다가가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단편영화를 너비조아 가족분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참 따뜻하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유무비'측과의 소통과, 장소대관에 도움을 주신 '미니시네마' 측에 감사드립니다.



※ '너비조아' 상영회 리뷰는 상영회를 찾아주신 관객분들과 함께 합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관객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너비조아)'는 매력적인 낯선 사람들과, 영화에 맞는 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페이스북에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를 검색해주세요.

너도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 https://www.facebook.com/same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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