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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Oct 27. 2019

2019. 10. 26.

내가 만든 허술한 스파게티를 두 접시에 나누어 덜고 마당으로 나간다. 싸구려 와인을 두 잔에 따른다. 저 멀리 두 불빛이 보인다. 그 뒤로 해가 저물며 긴 석양을 남긴다. 바람이 분다. 하늘이 높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시 바라본다. 서늘하지만 아직 반팔 차림으로도 괜찮다. 오늘 37킬로미터를 걸었고, 땀을 적잖게 흘렸다. 전화를 한통도 받지 않았다. 오후 두시 반에 아직 여름의 여운이 남아있는 해변 구석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싼 하몽과 싸구려 치즈와 노천시장에서 산 빵이었다. 그 이후 야트막한 언덕을 제법 올랐다. 길 한가운데 반듯하게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개를 보았다. 트랙터에 묶여 끌려가는 두 마리 소를 보았다. 그 소를 바라보며 다른 소들이 일제히 우는 소리를 들었다. 사과를 줍고 따는 사람들을 보았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세요를 받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았다. 그 중 한 할머니가 '세뇨라 두 명을 못봤냐'고 물어서 '저기 위로 올라가면 있어요'라고 답했지만 결국 엉뚱한 방향을 알려준 것이 되었다. 오늘 하루를 순서대로 떠올린다. 아침 여덟시 반부터 오후 여섯시 반까지를 더듬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늘이 좀 더 어두워져있고 석양이 남기는 불길도 막바지가 되어 간다. 저 멀리 두 불빛이 조금 더 빛난다. 직접 만든 음식을 입에 떠넣는다. 여기 자유, 바람, 하늘, 우정이 있다. 다른 것을 바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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