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트한자 파업 덕분에 3일 동안 산티아고에서 공짜 숙식을 제공받았다. 한 호텔에서 몇 끼를 먹는게 고역이었는데, 다행히도 음식값에 구애없이 아무거나 시켜도 되었다. 나는 둘째 날 저녁과 셋째 날 저녁 모두 하몽이베리코를 주문했다. 이 호텔 메뉴에서 가장 비싼 - 한 접시에 22유로 - 메뉴였다. 그런데 셋째 날 저녁 하몽은 씹으면서 뭔가 거슬리는 기분이 자꾸 들었다. 같은 하몽이겠지만, 부위가 달랐거나 자르는 솜씨가 달랐던 것이 아닌었나 싶다.
그런데 셋째 날 하몽이 맛없어도 별로 실망스럽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십유로짜리 메뉴 델디아 - 세 접시 음식에 음료에 빵까지 추가되는 오늘의 백반 - 를 시켜도 음식이 나오기 전에는 한껏 기대하기 마련이고, 음식이 내 눈앞에 나왔을 때, 내 입에 들어갔을 때 간혹 만족감이 들거나 자주 실망감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일유로짜리 와인 한잔을 마실때도 너무 나쁘지 않기를 내심 바라면서 잔을 들었고, 역시나 맛이 없다면 '그래도 일유로짜리니까 이정도면 뭐'라며 위로를 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자란 이런 것 아닐까. '내가 구매하는 것의 가치' - '내가 지불하는 돈의 액수' 사이에 비례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 그래서 뭔가를 사더라도 돈이 아깝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 구매하는 것의 가치가 어떠하더라도, 내가 지급하는 돈은 나에게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돈의 액수가 물건의 가치에 상응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게되는 것.
이것, 대단한 경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