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을 걸으면 생각하는 것이 밝아지고 긍정적이 된다. 거창한 인생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이렇다. 빌랄바로 향하는 날 오전 아직 빗방울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늘에 어두운 구름이 많았고 바람은 매서웠다. 세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쉴 만한 곳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 지나친 벽이 있는 버스정류장은 이미 다른 페레그리노 세명이 퍼질러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작은 마을들을 지나 곤단쪽으로 계속 걸어가는데 수리 중인 알베르게가 보였다. 나와 에이치는 이곳에 만들다 만 현관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고 바람을 피했다.
며칠 전 까네로에서 같이 숙박했던 레스무스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혼자 걸었고 큰 키에 휘청휘청 잘 걸었다. 그는 우리와 인사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시덥잖은 이야기가 오갔다. 제법 두툼하게 옷을 껴입고 있었는데도 춥다고 했다. 나는 여름에도 입었던 긴팔 트레킹 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대비해서 산 얇은 패딩은 한 번 입고 라레도에서 잃어버렸다. 그는 나에게 춥네요, 옷을 좀 더 사야할 것 같은데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을거야, 라고 답했다. 그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었다. 그는 곤단에 가면 카페가 하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물었다. 나는 여기가 곤단이야, 라고 답했다. 그는 이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이 흐려졌다. 다음 마을에는 바가 열었을지도 몰라. 내가 위로했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이라 바가 있더라도 문을 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레스무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약간 불안해진 나는,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일요일 아침이잖아, 라고 말했다. 네 그렇죠.
우리는 소변을 건물 주변에 아무렇게나 갈겼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내가 그의 기분에 참견했다. 오전 내내 문 연 바가 없었지만 더 나빴을 수도 있어. 적어도 비는 내리지 않았잖아. 거의 2주 동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훨씬 두껍게 입고 있었고, 한국보다 훨씬 추운 덴마크 출신인데다가, 키도 나보다 10센티미터는 크고 체격도 좋았다. 나는 실없이 그를 위로한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내가 진지하게 그렇게 믿는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 아침에 적어도 비는 오지 않으니까 다행이라고. 얼마든지 더 나빴을 수도 있으니 이정도면 괜찮은거라고. 만약 비가 흩뿌렸으면 폭풍우는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폭풍우가 왔다면 높은 지대를 걷는 중이라 물바다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낙관. 이곳에 와서 운이 좋다고 할만한 상황이 오면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돈다고 에이치에게 농담을 건네고는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라고 해봐야 숙소를 쉽게 찾은 것어거나, 닫은 줄 알았던 숙소가 문을 연 것이거나, 그 숙소에 따뜻한 전열기가 있거나,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던 작은 마을에서 괜찮은 식당을 발견하는 정도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운이 좋다고 느꼈고, 언제나 최악은 면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우리는 이십분 뒤 산 후스토 데 카바르코스의 바에서 카페콘레체 그랑데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