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호성 Nov 30. 2019

까미노의 특별함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한 방에 가득한 침상, 공중화장실, 안내문과 경고문, 코 잘 골게 생긴 사람, 새침해 보이는 젊은 여자, 어딘가 찌든듯한 중년, 뚱뚱한 독일인, 키큰 네덜란드인, 머리 작은 캐나다인, 눈에 띄는 동양인, 백발노인, 커다란 백팩, 기다란 스틱, 진흙묻은 신발, 양말이 내걸린 빨랫줄, 긴 식당 테이블. 이곳에 오니 이제 실감이 난다. 다시 페레그리노가 되었다.  원래 이랬던 곳으로 돌아왔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이제 유명한 관광 상품이다. 텔레비전 광고에도 리얼리티쇼에도 등장한다. 유럽으로 걷기 여행을 간다고하면 대번에 알아채기도 한다. 그때문인지, 이번에는 나 자신도 특별한 여행을 즐긴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같이 즐긴다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아니지만, 나도 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된다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다.  

예전에는 달랐다. 2007. 3. 프랑스 르쀠 성당에서 ‘2006’이라고 찍힌 조개모양 목재 기념품을 사서 가방에 넣을때만 해도 과연 이러한 여행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웠고, 50여일을 걷고 난 뒤에는 이런 방식의 삶도 가능하구나하고 감탄했다. 그 기억을 되살려보고 추억을 되짚어보려고 두 번 더 걸었다. 걷기 시작 전에는 잠자기 전 혼자 씩 웃을 정도로 설레였다. 특별한 방식의 여행이자, 비록 한 달 정도이지만 특별한 방식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이 큰 특권이고 대단한 행운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교토나 빠리를 가는 정도의 기분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한다는 의미에서는 특별하지만, 여행 그 자체로 떼어놓고 보면 별로 특별한 것이 없고, 여행사의 여러 상품 중 하나를 고른 기분이랄까. 생각해보면 걷는 것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다. 도시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나왔다는 기분도 곧 당연하게 느껴지고, 소나 양이 바다를 배경으로 풀을 뜯고 있어도 시큰둥해진다. 와인, 하몽도 처음 며칠뿐이다. 새로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칠때가 많고,  내 소개도 같은 내용이 반복되다보면 귀찮아진다. 이 길의 유명세가  이번 여행이 평범하게 느껴진 이유가 아닐 수도 있겠다. 오히려 이렇게 평범한 여행이 어떻게 널리 알려졌는지를 신기해하는 것이 마땅한지도 모르겠다.

* * *

29일 동안 쉬는 날 없이 840킬로미터를 걸었다. 그리고 이 여행의 특별한 점은 바로 이것이라고 느꼈다.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 데 모으고, 그것들을 매일 되풀이한다는 것. 하루 혹은 며칠 동안 배낭을 매고 걷고, 그 지역 풍경과 음식을 즐기는 데는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한달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의 목적지를 정하고, 주로 바다와 들판을 가끔은 대도시 주변을 걷고, 주로 혼자 가끔은 다른 사람과 나란히 걷는다. 다른 페레그리노를 만나면 주로 홀라 하고 지나치고 가끔은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답한다. 밤 10시도 되기 전에 불을 끄고 잠을 청하고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싼다. 이런 일을 되풀이하다 보면, 이것들이 쌓여서 어느 기간을 넘어서면, 비로소 이 길에 어떤 특별함이 있다고 믿게 된다. 지속되는 시간의 길이에 따라 양이 느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질적 변화가 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서른 번 걸은 것이 아니라 서른 번 걸은 한 번의 여행이 있다고 할까. 목적지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그 날 걸을 거리를 자신이 정하고 해내는 것. 같이 걷는 동료가 있거나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것. 몸을 사용하고 돌보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그 중요성을 여정 중반을 넘기면서 실감하게 되고, 여행 막바지에서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잊고 살아올 수 있었는지 의아하게 된다. 그러고보면 꽤나 계몽적인 여행이다.

그리고 끝내주는 것이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사실 성당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솔직히 레온 대성당이 더 멋지기도 하다. 그러나 목적지가 단순히 한 점이나 선이 아닌 것은 고마운 일이다. 저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하면 마음이 저 깊은곳에서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저기구나. 광장에 도착해 대성당을 바라보면 더 갈 곳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여기서 끝났구나. 그 시원섭섭함. 한 달을 걸었든 반 년을 걸었든 단 한 번만 느낄 수 있는 감정. 그 감정을 막 도착했을 때 바라보는 대성당이 달래준다. 이 감정은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이 감정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닥을 알 수 없는 낙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