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시 약간 너머서 출발, 하동 화개장터에 여섯시 반에 도착했다. 벚꽃은 아직 만개에 이르지 않았고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 하나 없었다. 벚꽃은 약간 지기 시작할때가 제일이지만, 전염병에 불경기에 나이도 마흔을 넘겼으니 투덜거릴 입장이 못된다. 그래도 이 시간에는 차들도 사람도 거의 없고, 밤늦게 동네 쏘다니듯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 늦은 오전에 도착해서 사람과 매연에 치여 신경이 곤두서는 것보다 이 편이 훨씬 낫다.
이곳 데크가 꽃 감상하기 가장 좋다. 보통은 땅에서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구경해야하지만, 이곳에서는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천을 따라 쌍계사 초입까지 벚나무들이 즐비한 것도 볼 수 있다. 나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그리고 예전에 갔던 찻집을 다시 찾았다. 마지막에 간 것은 꼬박 10년 전이다. 오늘 와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겨울에도 찬물로 목욕할 것 같은 주인장도, 시집 안가고 엄마 모시고 사는 둘째 누나같은 점원도, 지저분한 창문도, '차실'이라고 창문에 써붙인 종이도,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가늠안되는 수석도, 도무지 안어울리는 주황색 쇼파도, 유리가 잘 맞지 않는 테이블도, 손님이 아무도 없다는 것도, 촌스럽지만 튼튼해 보이는 다기도, 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갤로퍼도, 심지어 찻값도 십년 전 그대로 5,000원이었다. 벽지가 좀 더 뜯겨져나간 것 같기는 했다.
그동안 내가 변하고 성장했다면, 이곳의 굳건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없을까. 그동안 내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면, 이곳의 고리타분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없을까. 어느쪽이든 간에, 이 찻집이 이곳에 그대로 있는 한, 아직 나의 운이 다한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아마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