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
레이몬드 카버의 위 소설을 며칠 전 아침 출근을 앞두고 카페에서 다 읽었고, 잠시 책을 덮어두고 앉아있었다. 중요한 무언가가 머리와 가슴에서 모호하게 엉켜있는 기분, 그 기분을 내버려두고 싶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일을 하러 갔다.
그런데 얼마 전 카버의 다른 책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뒷면 표지에 아래 글이 쓰여 있던 것을 발견했다. 며칠 전 딱 내 마음이었다.
"만약 우리가, 작가와 독자 모두가 운이 좋다면, 우리는 단편소설의 마지막 한두 줄을 마치고 잠시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방금 우리가 쓴 또는 읽은 글에 대해 생각하리라. 아마 우리의 심장 또는 지성은 글을 읽기 전에 비해 아주 살짝 그 위치가 달라졌으리라. 우리의 체온은 눈에 띄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리라. 이윽고 숨이 다시 차분해지면, 우리는, 작가와 독자는 마찬가지로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나리라. 그리고 (...) 다음 일을 향해 전진하리라. 삶을 향해, 언제나 삶을 향해.
원문은 아래와 같다.
“If we're lucky, writer and reader alike, we'll finish the last line or two of a short story and then just sit for a minute, quietly. Ideally, we'll ponder what we've just written or read; maybe our hearts or intellects will have been moved off the peg just a little from where they were before. Our body temperature will have gone up, or down, by a degree. Then, breathing evenly and steadily once more, we'll collect ourselves, writers and readers alike, get up, "created of warm blood and nerves" as a Chekhov character puts it, and go on to the next thing: Life. Always life.”
2.
위 번역도 괜찮고 잘 읽히지만, 내가 번역했다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운이 좋다면, 작가나 독자나 매한가진데, 단편소설의 마지막 한두 줄을 마칠 것이고(운이 좋지 않아서 소설이 별로라면 쓰거나 읽는 것을 마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마친다는 의미는 중요하므로 '것이다'를 붙인다) 잠시,(뒤에 '조용히'가 중요하므로 여기에 쉼표 찍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 잠시 앉아 있을 것이다. 조용하게.'는 약간 과하다)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이상적이라면(쓰거나 읽은 소설 내용이 아주 좋았다면이라는 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쓴 것 혹은 읽은 것에 대해 곰곰히(ponder 는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의미이므로) 생각하리라. (쎄미콜론 해석을 고민하다가 생략한다. '그러면서'가 적당할 거 같은데 영 안어울린다) 어쩌면 우리의 심장(사실 뒤에 나오는 지성과 대비되는 단어로는 '가슴' 혹은 '마음'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저 아래 체온이 언급되므로 '심장'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혹은 지성이 그 전에 박혀 있던 곳에서 아주 약간 떨어져 나오리라. (위 번역처럼 '읽기 전에 비해'라고 하면 독자만 해당되고 작가 입장은 반영이 안된다. 그 '위치가 달라졌다'고만 하면 'off the peg'의 어디 박혔다 떨어져 나온다는 의미가 살지 않는다.) 우리의 체온이 일도 오르내리리라. ('by a degree'를 체온과 관련해서 해석하면 차라리 1도라고 해석하는게 나을것 같다. '눈에 띄게'는 의미가 과해진다. 의미가 과해지는 것은 카버가 극도로 꺼렸을 것이다.) 이제('이윽고'는 너무 길지 않을까. 이미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몇 문장이 나왔으므로 '이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더 숨을 고르게 그리고 천천히 내쉬면서, 생각을 추스리고, 작가나 독자나 매한가지로, 체호프의 등장인물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만들어진 피조물로서"[개들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등장하는 구절] 일어나서, 다음으로 나아가리라.('다음 일'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전진한다고 하면 의미가 너무 과해진다) 삶. 언제나 삶으로(삶을 향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죽음과의 경계에서 삶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괄호를 빼고, '우리는' 주어를 몇 군데 생략해보았다.
"만약 운이 좋다면, 작가나 독자나 매한가진데, 단편소설의 마지막 한두 줄을 마칠 것이고 잠시, 조용히 앉아 있을 것이다. 이상적이라면, 쓴 것 혹은 읽은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심장 혹은 지성이 그 전에 박혀 있던 곳에서 아주 약간 떨어져 나오리라. 체온이 일도 정도 오르내리리라. 이제, 한번 더 숨을 고르게 그리고 천천히 내쉬면서, 생각을 추스리고, 작가나 독자나 매한가지로, 체호프의 등장인물이 표현한 것처럼 "따뜻한 피와 신경으로 만들어진 피조물로서" 일어나서, 다음으로 나아가리라. 삶. 언제나 삶으로.
사실 마지막 '삻으로' 부분은 여러모로 궁리해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생각에 위 글은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읽거나 쓰고, 감동을 받고, 그리고 다시 이야기(허구)에서 나와 삶(현실)으로 옮겨가는 상황을 훌륭하게 묘사한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구절 "go on to the next thing: life, always life"는 꽤 중요한 의미가 있는것 같은데, 이렇게 짧고도 강렬한 구절을 탁 풀어내자니 쉽지 않다.
3.
개인적으로 편집(카버의 편집자)이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나는 번역된 소설집 "풋내기들"에 수록된 위 소설을 읽었는데, 널리 알려진 "대성당"에 수록된 판에서는 와이스 부인(엄마)이 집에 돌아왔을 때 상상했던 부분이 빠져있다. 이 사건 이전에도 스코티를 잃은 줄 알았던 경험이 있었고, 그 때 엄마는 이 도시를 떠나기로 신에게 약속했는데 그걸 지키지 않은 것을 마음에 걸려하는 부분이 모두 생략된 것이다. 편집자가 심사숙고했으리라 생각하는데,(특히 아빠인 하워드가 집에 갔을때에 비교하면 엄마의 회상 부분이 약간 길다) 몇 번 읽다보니 이 부분이 마음에 든다.
4.
번역 제목 얘기를 안할 수가 없다. 원제는 "a small, good thing"이다. 번역 제목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이 자체로는 제법 멋진 제목같지만, 아무리 보아도 번역으로서는 과하다. "작고, 좋은 것"으로 번역자가 만족하지 못한 기분은 이해하지만, 어찌되었는 카버가 이 선택을 좋아했을 것 같지는 않다. (“별거아닌 좋은 일”이라는 의견을 제안받기도 했다)
5.
원문으로 읽다보면, 스코티가 죽은 직후 걸려온 전화에서 스코티의 엄마를 미치게 하는 문장이 있는데, 풋내기들에 수록된 번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번역에서는,
"스코티 말입니다. 준비 다 해놨는데요." 그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스코티는 잊어버리셨나요?"
원문에서는,
"Your Scotty, I got him ready for you." the man's voice said. "Did you forget him?"
위 번역도 꽤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만 해 두면 그 전에 걸려왔던 전화에서 자제심을 잃지 않다가 갑자기 폭팔하는 것이 잘 성명이 안된다.
(김연수가 번역한 대성당의 수록본은 ‘그를 준비했다’고 되어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놨지만, 오랜만에 정말 좋은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번역도 사실 잘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