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니체 12일 차 - 인간말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by Homo ludens

[최후의 인간]

차라투르스라의 설교에도 군중들은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왜 군중은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요?


군중들이 바라는 모습은 '위버멘쉬'가 아닙니다. 허무를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위버멘쉬의 삶은 그들이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들은 '최후의 인간(letzter Mensch)', 즉 '인간 말종'을 바랍니다. '인간 말종'은 '위버멘쉬'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위버멘쉬'가 자기를 극복하는 변화의 주체가 되는 자라면 '인간 말종'은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를 원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변화하기 직전 마지막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최후의 인간'을 차라투스트라는 비판합니다.

슬픈 일이로다! 사람이 더 이상 별을 탄생시킬 수 없게 될 때가 올 것이니. 슬픈 일이로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그리하여 경멸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의 시대가 올 것이니. 보라! 나 너희에게 인간말종을 보여주겠으니.... 대지는 작아졌으며 그 위에서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저 인간말종이 날뛰고 있다. 저들 종족은 벼룩과도 같아서 근절되지 않는다. 인간말종이 누구보다도 오래 산다.

'인간 말종'의 특징은 '창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즉 스스로를 경멸하여 자기 극복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군중들은 왜 '인간 말종'의 말에 귀를 기울일까요?


'인간 말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군중을 유혹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

행복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행복'이 최고의 가치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이다.",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사는 것이 최고다." 도전과 시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행복'을 쫓으려 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가난해지거나 부유해지려 들지 않는다"라고 비판합니다. 이 유혹은 너무도 강력해서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들고 맙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들이 '인간 말종'이 되기를 바란다는 함성을 내지르자 자신의 "머리말"의 첫 번째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말"의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게으름뱅이의 천국>, 피터 브뤼헐(the elder), 1550

브뤼헐의 그림 <게으름뱅이의 천국>에는 누워있는 세명의 사람이 보인다. 이 모두는 배부른 상태로 일하지 않고도 만족하고 있다. 음식은 나무 위에서 흘러내릴 정도로 풍족하다. 왼편 아래의 농부는 도리깨를 깔고 누워있으며, 왼편 위의 기사는 장갑과 창을 내던지고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다. 오른편 아래의 학자는 책도 내팽개치고 나무 위의 술병에서 술이 흘러내리길 기다리고 있다. 평범한 세계에서의 휴식이 주는 '행복'은 이곳에 없다. 휴식이 행복인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 휴식은 나태일 뿐이다. 지속되는 휴식은 또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고 또 다른 행복으로 나아갈 의지조차 꺾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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