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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니체 47일 차 - 아직 존재하지 않는 , 인류?

<천 개 그리고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 3>

by Homo ludens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인류]

차라투스트라는 각 민족들이 창조한 가치가 선악의 다양한 관점의 증거임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늘 파괴되고 다시 창조되는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개인들은 새로운 가치의 창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가치의 변천, 그것은 곧 창조하는 자들의 변천이기도 하다.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는 끊임없이 파괴를 하게 마련이니.
원래 민족들이 창조의 주체였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개인이 그 주체가 되었다. 진정, 개인 그 자체는 최근의 산물이다.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체성을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에서 찾았습니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집안' 사람인지, '어느 스승' 혹은 '어느 학교' 출신인지는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지표였습니다.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삶에 대한 지향성 역시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중세에 이르러 부족 혹은 도시 단위의 집단은 종교라는 거대한 질서에 편입됩니다.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믿음은 그들의 도덕관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르네상스에 들어서자 점점 독자적인 천재적 개인이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의 천재성을 신과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도구로 흔히 사용했습니다. 18세기 즈음의 계몽주의는 도덕의 주체를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라고 정의했고, 낭만주의는 합리성을 넘어선 개인의 고유한 감정과, 영혼, 독창적 창조성이 최고의 가치라고 평가했습니다. 니체는 기존의 신이나 사회적 도덕으로부터 주어진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을 폐기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새로운 목표와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위버멘쉬'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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