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자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활동하던 시대의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와 의회 정치가 혼합된 형태였다. 1832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귀족이 아닌 신흥 중산층에게도 투표권이 부여되었으나 여전히 노동자와 여성은 배제되었다. 밀은 모든 성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여전히 중우정치를 우려하여 교육 수준에 따른 차등 투표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은 전통적인 지주 계층인 귀족으로 이루어진 보수세력이 토리당과 상공업자들을 기반으로 한 진보, 자유당 세력인 위그당이 대립하고 있었다. 차티스트 운동(Chartist Movement, 1838-48)을 통해 모든 남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고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통해 시민권리가 확대됨에 따라 다수 인민의 힘이 강화되었다. 권력의 이동은 새로운 위협에 대한 공포를 불러왔고, 기존의 도덕과 규범은 종교가 아닌 '여론'이라는 방식으로 국민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자유론>의 서문에서 '자유'의 범주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밀이 말하는 자유는 소위 '의지의 자유'라 불리는 인간의 운명과 신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배와 피지배, 나와 타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책임과 권리의 한계라는 의미의 '자유'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자유'는 "지배자들의 폭정으로부터 보호받은 것"을 의미했지만, 이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적대적 관계에 있을 때에만 유효했다. 참정권을 얻은 다수의 시민이 자신의 대리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피지배자와 지배자가 손을 잡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적대적 관계는 전통적인 귀족이 되며,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힘을 합쳐 다수의 시민들을 위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지배자가 피지배자와 적대적인 시절 만들었던 권력에 대한 제동장치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다수의 폭정은 다시 시민적 자유를 제한하는 또 다른 위협으로 등장했다.
"국민 자신을 지배하는 국민의 권력"이라는 '자치'의 개념은 국민 전체의 동의를 얻지 못한 '다수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공권력의 폭정'뿐 아니라 "지배적인 여론이나 정서의 폭정"도 포함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위협은 '개성(individuality)'의 발전을 막고, 모든 사람의 '인격'을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밀은 "개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적 통제를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방법으로 '법률을 통한 강제'와 '여론을 통한 강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해답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 즉 시대와 장소의 상대성에 따라 다른 해법을 갖게 된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각 시나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자기비판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밀이 지적하듯 '관습'이라는 것은 "제2의 본성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제1의 본성으로 잘못 받아들여진다".
개개인의 판단의 원인에는 이성, 선입견, 미신, 사회적인 호감이나 반감, 시기, 질투, 오만함, 경멸 등이 있다. 이성은 이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밀은 법률이나 여론에 의해 허용되거나 금지되는 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행태를 "노예근성"이라고 말한다. 이 노예근성은 법률과 여론의 힘을 신성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낳는다. 혐오를 견디지 못하거나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에게 복종하듯 법률과 여론의 노예가 된다.
밀은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로 '개성(individuality)'을 뽑았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AI시대에 '개성'은 어떤 처지에 놓여있을까? 무한한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은 우리의 '개성'을 증진시켜 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 AI의 추천 알고리즘은 정보에 대한 편향성을 강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자신과 비슷한 생각과 신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에 대한 확증을 강화시키는 에코 체임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는 새로운 생각이나 불편한 진실에 대한 개방성을 낮추게 된다. 밀이 우려했던 '관습의 독재'는 이제 '알고리즘의 독재'로 변모한 것은 아닐까? 이전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우리는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또한 밀이 제기한 '여론'의 힘, 즉 사회적 압력은 AI시대에 더 커진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정보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판, 신용 등을 실시간으로 평가한다. 물리적 거리를 지키면서 타인과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AI시대의 '데이터 감시'는 자신의 모든 관심사 혹은 우발적 시선조차 포획하여 저장한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누군가에게 공개될지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평균적인 표준'인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보장된다는 말과 대조적으로 다수의 의견은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쇼츠를 타고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게 만든다.
마그리트의 <연인들>에 등장하는 두 남녀는 자신들의 고유한 얼굴, 즉 '개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받는 사람들은 소위 '등급'으로 나뉜다. 사업의 특징상 서로가 원하는 스펙에 의해 매칭되기 때문에 개개인이 가진 측정될 수 없는 성질의 그것은 '등급'에 포함되기 매우 어렵다. 결혼정보회사의 등급은 극단적 예에 불과하다. 여러 매체에서 우리는 '20대 남성', '40대 여성', '정치 성향 중도' 등 데이터 꾸러미로 취급받는다. 누군가의 특징은 어느 브랜드의 옷, 자동차, 아파트 등으로 평가받기 십상이고, 연봉과 직장 등으로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림에서 두 연인은 천이라는 '필터'에 스스로를 완전히 가두고 자신과 상대를 질식시킬 것 같은 애정행위에 몰입한다. 그들에게는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사랑보다는 관계와 행위라는 상태만 남아있을 뿐이다. 두 연인이 질식 직전 상대를 뿌리치고 잠시의 휴식을 가진 후 또 다른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그들이 과연 스스로 자신의 천을 벗어버릴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