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극복에 대하여 1]
차라투스트라는 지혜롭다는 자들이 말하는 "진리를 향한 의지"의 정체를 밝히고자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진리를 향한 의지"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고 하는 권력욕에 닿아있습니다.
더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너희는 너희를 앞으로 내몰고 열렬하게 타오르게 하는 것을 두고 "진리를 향한 의지"라고 부르는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 나 너희의 의지를 이렇게 부르는 바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변하는 않는 상태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모든 사물은 제각각의 정해진 목적을 가져야 하며,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역할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소위 정해진 목적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목적론과 결정론은 혼돈 속에도 질서가 있다는 위안과 평안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부여한 세계의 목적 속에서 그들조차 자신의 체계에 복종하며 안도감을 얻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너희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그런 세계를 창조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의 마지막 희망이자 도취렷다. 본래 지혜롭지 못한 자들, 곧 민중은 한 척의 조각배가 헤쳐 나가고 있는 강물과도 같다. 가치 평가라고 하는 것이 가면을 쓴 채 엄숙하게 앉아 있는 그런 조각배가.
그들은 세계가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기를 바라며, 그 합리성에 스스로 무릎을 꿇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세계의 잔혹함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체계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창조하여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자신들의 세계 혹은 신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전지전능하며, 자애롭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세계의 합리성을 다수의 합의에 의해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다수의 민중은 강물의 거대한 흐름에 따라 나아가는 조각배에 불과합니다. 거대한 강물의 흐름의 실체는 다수가 믿는 '가치 평가', 즉 선과 악, 관습과 도덕이라는 작은 틀일 따름입니다.
더없이 지혜롭다는 자들이여, 너희의 위험은 강에 있는 것도 선과 악의 종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의지 자체에, 곧 힘에의 의지, 지칠 줄 모르고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 의지에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안정의 틀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틀을 깨는 것은 외부의 위험이 아닌 내부의 힘,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생명력 그 자체입니다. '힘에의 의지'는 생명이 단순히 현상 유지나 생존 자체에 만족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더 강하고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는 의지,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새로운 가치를 창조시키는 자기 극복이 '힘에의 의지'입니다.
생명체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복종 운운하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복종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것은 이것이니, 자기 자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존재에게는 명령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생명체의 천성이 이러하다.
모든 생명체는 안정감을 위해 자신보다 강한 존재에게 복종하여 생존하려는 천성이 있습니다. 특히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리고 이를 지켜낼 수 있는 자기 극복의 의지를 갖지 못한 자들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인은 타인의 명령을 듣거나 타인에게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을 이기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자입니다.
아르헨티나 출생의 이탈리아 예술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는 1946년 회화, 조각, 음악, 시의 융합을 제안하고 전통적인 재료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하는 "백색 선언문(Manifesto Bianco)"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공간주의(Spazialismo)' 선언문을 발표한 예술가는 모든 정적인 예술 형식의 종말을 선언하고 역동적인 예술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간개념: 기다림>에서 그는 정성스럽게 칠해진 캔버스를 칼로 찢어버립니다. 이는 외부의 훼손에 의한 것이 아닌, 작가 내부의 결단에 의한 파괴적 창조의 의지입니다. 그는 기존의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 무한의 공간으로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캔버스 위의 가짜 공간의 틈을 통해 드러난 심연의 공간은 우리의 의식 이면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공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루치오 폰타나는 기존 예술가들의 조각배가 떠있는 강물의 잔잔한 표면에 모세의 기적과도 같은 힘에의 의지의 성스러운 결단을 내립니다. 세상의 경계인줄 알았던 캔버스는 그 자체로 생명이 되어 세계 속에 포함됩니다. 폰타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기다림(Attese)'라고 명명하여 캔버스의 틈이 과거의 흔적이 아닌 새로운 가치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다음 콘텐츠는 매주 월요일 무료로 공개되며, 멤버십 구독을 통해 전편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4권은 얼마간의 휴식 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