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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Sep 20. 2024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해설 -2부-

부산 전시 가이드 - 2부

[400년의 미술사를 한 자리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2024.07.02 - 10. 27까지 이어지는 전시의 모토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이다. 


V.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VI. 인상주의 이후

VII.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VIII. 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IX.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


4부까지 인상주의 이전의 양식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5부에서 6부까지는 인상주의의 발전과 인상주의가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7부와 8부는 아방가르드의 실험을 통해 등장하는 새로운 미술의 예들에 대해 다룬다.


V.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19세기 중후반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반대하여 등장한 양식으로 모더니즘의 시작으로 불리는 미술사조이다. 인상주의를 언급하기 위해 이야기되어야 할 예술가는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단초를 마련해 준 에두아르드 마네 (Édouard Manet, 1832-83)가 있다. 하지만 <인상주의(Impressionism)>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품 때문이다.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

비평가 루이 조셉 르루아(Louis Jeseph Leroy, 1812-85)는 1872년 4월 25일 발간된 <Le Charivari(르 샤리바리)>지에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를 비판하며 처음 '인상파'를 언급했다. 화가가 단순히 자신의 인상만을 그린다고 비판한 그의 비평은 실로 정확했다. 화가는 '인상'을 그리고 싶었다. 여기서 '인상'은 출판 혹은 각인을 뜻하는 'press'와 접두어 'in/m' '~안으로'의 합성어이다. 외부 환경 혹은 사물이 주체에게 박히는 인상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것이 인상주의이다. 이전의 화풍인 고전주의와 사실주의는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 것을 재현하려고 했다. 역사적 사실, 자연 풍경 등의 실제 있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던 반면 인상주의는 '이 순간', '내 눈에 비친' 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은 보편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별적 경험을 개별적 인상으로 담아낸다. 르 아브르 (Le Havre)의 항구에서 본 해돋이의 모습이 어느 누구의 눈에나 모네처럼 비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어느 누군가 그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같은 장면을 볼 수는 없다. 모네가 같은 곳을 같은 시간대에 방문한다고 해도 같은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저 인상은 일회적이고 반복될 수 없다.

왼편: [전시중] <봄>, 1875, 클로드 모네; 오른편 <봄>, 클로드 모네, 1886

모네는 같은 이름의 다양한 작품을 남긴다. 그가 그린 다양한 <봄> 가운데 전시된 1875년의 봄과 전시장에는 없는 1886년의 봄에는 공통점이 없다. 그날의 봄과 저 날의 봄은 각기 다른 인상을 그에게 남겼고, 그는 각기 다른 인상으로 우리에게 전했다.

[전시중] <브뇌 강가>, 알프레드 시슬리, 1881

영국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인상주의 작가 알프레드 시슬리 (Alfred Sisley, 1839-1899)는 파리에서 모네, 르누아르 등과 친분을 쌓고 바르비종파들이 작업하던 퐁텐블로로 이주하여 야외에서 (en plein air) 빛의 효과를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법을 연구했다. 위대한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Stephan Malarmé, 1842-1898)는 시슬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시슬리는 하루 중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는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날아가는 구름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캔버스에는 공기가 살아 움직이고 나뭇잎이 여전히 떨리는 것 같다.>


한편 한 예술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새로움을 보여주었다. 그는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1834-1917)이다. 드가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면의 것, 숨겨진 것을 드러내 주었다. 

왼편: <스타>, 1878; 가운데: <두 무용수>, 1898; 오른편: [전시중] <두 무용수>, 1898

드가의 <스타>는 관객의 시선에서 보이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소 기괴해 보이는 빛의 연출에 의해 마치 인형처럼 보이는 발레리나의 얼굴에는 그녀의 감정을 담겨있지 않다. 화면의 뒤편으로 한 신사가 얼굴을 숨긴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 무용수들은 공연 이후 부유한 신사들에 의해 선택되는 일이 많았고 그녀들의 숨겨진 육체적 노력과 무대 이후에서 벌어지는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함이 드가의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두 무용수>에서 그는 무용수의 고통스러운 연습과정을 보여주고 그가 남긴 시에는 그의 무용수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다.


<춤이 너의 삶이 되도록, 춤이 너만의 매력이 될 수 있게 물결처럼 굽이치는 선을 따라 네 가냘픈 팔을 뻗어 너의 무게와 미끄러지는 움직임 사이에서 우아한 균형을 잡아라.>


VI. 인상주의 이후

인상주의의 찰나에 대한 관찰과 기록에 대한 시도는 이후 이어지는 다양한 화풍에 영향을 준다. 빛의 효과를 관찰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에 또 다른 해법을 내세운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조르주 쇠라(George Seurat, 1859-91)는 31세에 요절한 비운의 예술가로 그의 친구 폴 시냑 (Paul Signac, 1863-1935)과 함께 점묘법(pointilism)을 개발했다.

왼편: <그랑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 1884-6; 오른편: [전시중] <라 로셸 (La Rochelle)>, 폴 시냑, 1912

점묘법이 주는 독특한 색감은 빛의 삼원색을 섞으면 나타나는 환함이 색을 통해 구현이 가능한 듯한 효과를 준다. 점묘법은 적은 색을 통해 명암과 입체감을 준다는 효율성뿐 아니라 대도시에서 개개인이 점처럼 모여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측면에서도 근대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기법이다. 점묘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가까이서 볼 때보다 멀리서 볼 때 그림이 더욱 선명해지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것, 즉 극도로 제한된 붓터치로 '인상'을 담는 방식을 또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컴퓨터의 '픽셀'로 같은 방식으로 현실 풍경의 해상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시냑의 <로 로셸>은 점묘법의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점의 크기를 '면'처럼 키워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점묘법을 통해 해상도를 키우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낮은 해상도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인상'을 담아내고 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사조를 꼽으라면 '입체파(cubism)'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입체파의 대표 작가인 파블로 피카소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예술가가 있다. 그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세잔은 입체파로 들어가기 전 중요한 토대를 닦는다.

왼편: <목욕하는 사람들>, 폴 세잔, 1898-1905; 오른편: [전시중] <목욕하는 사람들>, 폴 세잔, 1898

세잔은 여러 편의 <목욕하는 사람들> 시리즈를 남긴다. 그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옷을 벗고 신체 그대로를 드러낸 인간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왼편의 <목욕하는 사람들>에서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적 지식이 드러난 신체는 없다. 전체적인 나무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삼각형 구도에 자연스럽게 모든 자연과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눈에 보이는 자연물과 인간의 색은 공통으로 쓰인다. 하늘의 푸른빛은 하늘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나무에도 뒤편의 건물 지붕에도, 목욕하는 물에도 심지어 사람의 피부에서도 발견된다. 사람의 피붓빛깔 역시 신체뿐 아니라 나무, 구름에서도 발견된다. 세잔은 대상을 재현할 때 기본적인 기하학 형태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것을 <모티브(motifs)>라 불렀고 이러한 환원 과정이 입체파로 이어지게 된다. 전시 중인 <목욕하는 사람들>에서 사람을 원통형으로, 오른편의 나무와 구름은 구형으로 환원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세잔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사과가 있는 정물>이 소개되지 않아 양쪽 눈을 가진 인간의 시선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시차에 대해 다루지는 않겠다. 하지만 회화의 대상을 기하학적 모티브로 환원하고자 했던 세잔의 시도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입체파>의 도래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다양한 예술가가 등장한다. 

그 가운데 왼편의 신사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Henri de Toulouse -Lautrec, 1864-1901)이다. 로트렉은 14세에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성장이 멈추는 장애를 가졌다. 장애로 집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그는 예술 활동에 몰두한다. 아들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그를 무시했고 그가 유명해지고 나서도 그의 작품을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즐겼다. 일종의 동질감일지도 모르겠다. 

왼편: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1887; 오른편: [전시중] <빗질 하고 있는 여자>, 1896

그는 고흐와 친분이 있었고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과 잦은 교류를 이어갔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었던 반 고흐에 대한 애정은 그에 대한 초상화에 잘 드러나있다. 어지러이 낙서 같이 그려진 배경과 그의 옷, 주변 물건들과 그의 얼굴은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그의 정신적 상태와 주변 인간관계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가 남긴 예술적 업적과 삶이 찬란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로트렉의 애정 어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오른편의 <빗질하고 있는 여자>는 로트렉이 자주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던 무용수나 창녀일 것이다. 그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애정에 대해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 1868-1940)는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귀족적인 정신을 갖췄지만 신체에 결함이 있던 그에게 신체가 멀쩡했지만 도덕적으로 타락한 매춘부들이 묘한 동질감을 줬을 것이다.>


조각 분야에서 근대를 열어젖힌 예술가는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1840-1917)이다. 그는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가 남긴 전통적인 신체 비례를 버리지 않았고 특히 미켈란젤로의 <논 피니토(non-finito)>, 즉 의도적으로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기는 기법을 잘 활용했다. 동시에 독창적인 해석과 구도 그리고 인물들의 자세와 특정 신체 부분의 과장된 크기 등은 그를 표현주의 혹은 상징주나 입체파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되게 했다. 그가 남긴 말처럼 그의 예술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와 같았다.

왼편: <이브>, 1891, 대리석; 오른편: [전시중] <이브>, 연도미상, 청동

1891년 로댕은 1884년에 이미 완성한 적이 있는 <이브>를 다시 제작한다. 그리고 아마 그 이후에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청동 조각도 만들게 된다. 로댕 특유의 창의적인 자세의 이브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잘 드러낸다. 원죄를 저지르고 그녀의 남편 아담에게까지 죄를 짓게 만든 그녀는 가장 추악한 내면을 가졌다고 생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로댕은 추한 것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원죄를 저지르고 부끄러움으로 살아가는 삶 자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생명' 그 자체이다.


<생명을 가진 것에 추한 것은 없다.>



3부는 20세기초 아방가르드 미술과 이후에 등장하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다룹니다. 앤디 워홀의 미술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고 그의 미술이 지향한 바를 이어지는 3부에서 다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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