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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Sep 13. 2024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해설 -1부-

부산 전시 가이드 - 1부

[400년의 미술사를 한 자리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2024.07.02 - 10. 27까지 이어지는 전시의 모토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이다. 전시관의 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I. 꿈에서 탄생한 미술관

II.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III.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미술

IV. 인상주의 이전 -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V.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VI. 인상주의 이후

VII.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VIII. 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IX.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


전시의 구성에서 드러나듯 전시를 기획한 미술사학자 시모나 바르톨레나(Simona Bartolena)는 서양미술사의 거대한 흐름 가운데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근대미술의 혁명적 전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이어져오던 전통적 회화와 결별을 고하고 새로운 미술을 향한 모험적 도전인 아방가르드로의 이행의 분기점으로서의 중요한 움직임이다.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에서 관람자들은 <인상주의>의 발생 이전과 이후에 대한 중요한 변화에 주목하여 관람한다면 거대한 시대의 흐름에서 각 예술가들이 어떠한 시도를 감행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왼편: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자크 루이 다비드, 1784; 가운데: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 오른편: <캠밸 수프 캔>, 앤디 워홀, 1962

위의 세 그림에서는 근대 회화의 중요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에서 인상주의 회화의 대표 작가인 클로드 모네의 작품으로의 이행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그리고 모네까지 남아있던 화가의 '그리는' 활동은 앤디 워홀에 이르러 사라진 듯하다. 앤디 워홀을 필두로 한 팝아트로의 변화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을까?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을 통해 이 변화를 확인하는 기회를 맞이해 본다.


I. 꿈에서 탄생한 미술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는 런던 중하층 상인으로 태어나 이후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광산의 거물이 된 라이널 필립스의 아내 플로렌스 필립스 여사의 노력에 의해 설립되었다. 전시의 첫 섹션은 필립스 부부의 초상화를 그린 안토니오 만치니(Antonio Mancini)와 조반니 볼디니(Gionvanni Boldini)의 그림 세 점으로 구성되었다.  

왼편: <자화상>, 안토니오 만치니, 1872; 오른편: <필립스 부인>, 안토니오 만치니, 1909 (전시중)

고전주의 회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칠고 두꺼운 물감 덩어리의 사용은 안토니오 만치니가 1877년 프랑스 여행시기에 인상주의 예술가 에드가 드가 (1834-1917)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와의 만남과 연관이 있다. 또한 1880년에 런던으로 초대한 미국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영향 또한 느낄 수 있다. 만치니는 1881년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고 그의 1872년 자화상에 이미 등장한 어둠 속의 디오니소스는 화가가 스스로 발견한 우울의 징조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필립스 부인의 노력으로 모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에서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143점의 작품을 통해 그녀가 바랐던 예술의 지향점을 느껴볼 수 있다. 그녀는 예술을 감상하는데 소외된 지역이 없기를 바랐다.


II.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네덜란드는 17세기 무역을 통해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수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게 된 네덜란드에는 각 지역에서 수입 혹은 약탈해 온 낯선 물건들과 막대한 부를 통해 풍부해진 일상의 물건들을 회화에 그려 넣게 된다. 이제 그림의 주제는 종교나 권력에 국한되지 않고 각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삶의 현장을 그리는 '장르화'(genre)와 사물들을 주제로 한 '정물화'(still life)가 유행한다.

왼편: <정물화>, 빌렘 클라츠 헤다, 1628; 오른편: <노인이 노래하면 젊은이는 피리를 불어라>, 얀 스텐, 1670-75

정물화에 등장하는 은식기와 은쟁반 그리고 레몬과 고급 시계는 당시의 부유한 삶을 증명해 준다. 또한 노래하는 노인과 피리 부는 젊은이 앞의 테이블에는 다양한 먹을거리가 놓여있다.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는 이전 시대에 등장하지 않던 새로운 주제, 즉 '일상의 삶'의 일부가 회화의 주제로 등장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종교적 성스러움과 교훈적 내용과 같은 초월적이고 도덕적인 것만이 그림 속에 들어올 자격을 갖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점차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한다.


III.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 미술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가장 급격한 변화의 시기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막강한 생산력과 경제력으로 대영제국의 전성기로 접어든다. 이 시기에 젠틀맨의 어원이 되는 젠트리 계층, 즉 신흥 자본가 세력의 성장은 전문직 인력의 활발한 사회진출이 보편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이러한 변화를 표현하려는 미술과 과거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시도하는 미술이 공존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는 윌리엄 터너(J. M. William Turner, 1775-1851)가 있다.

왼편: [전시중] <안더나흐의 해머스타인>, 윌리엄 터너, 1817 (전시중>; 오른편: <비, 증기 그리고 속도>, 윌리엄 터너, 1844

<비, 증기 그리고 속도>는 윌리엄 터너의 대표작이다.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것은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속도였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터너가 선택한 방식은 가장 선명한 것이 아닌 흐릿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성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비 오는 상황설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증기기관차의 속도감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네덜란드 황금기의 회화에서처럼 그림의 주제는 더 이상 성스럽지도 역사적이지도 않다. 가장 역사적인 것은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그에 따른 인간의 감각의 변화였다. 전시된 터너의 그림은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수채화 <안더나흐의 해머스타인>이다. 그는 수많은 풍경화를 그렸는데 이후 유화로 그리게 되는 환상적인 작품들을 남기는데 영국의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터너를 "자연의 분위기(기분)를 가장 감동적이고 진실되게 측정할 수 있는(stirringly and truthfully measure the moods of Nature)" 예술가라고 평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일련의 사건과 자연 현상에서 영감을 받아 수채화와 스케치로 기록했고 이를 발전시켜 나갔다. 터너는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투명하고 반짝이는 색으로 순수한 빛을 연상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물체의 형태는 점차 사라져 갔고 이러한 표현기법은 이후 인상파 화가인 모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이 시기에 등장한 <라파엘 전파 (Pre-Raphaelite Brotherhood, PRB)>는 라파엘과 그의 추종자가 만들어낸 회화의 기법들과 기법 그 자체에 빠져버린 관습적 회화의 양상에 반대했다. 그들은 라파엘 이전의 화가들이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세밀하게 묘사했던 것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들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ias, 1829-96),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1828-82),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1827-1910)이다.

왼편: [전시중] <한 땀! 한 땀!>, 존 에버렛 밀레이, 1876; 오른편: <성모와 성자>, 라파엘로, 1507-08

이번 전시에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아름다운 소녀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라파엘로의 <성모와 성자>에서 그려지는 아름다움은 정형화되어 있다. 라파엘로가 그려낸 조화와 균형미는 매우 훌륭하지만 그가 성모를 통해 그려내지 못한 그녀의 아련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눈빛을 밀레이는 <한 땀! 한 땀!>에서 그려내고 있다. 라파엘 전파가 보기에 라파엘의 화풍은 아름답지만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밀레이는 어느 장소에 어떤 시간에 존재할 것만 같은 소녀를 화폭에 담아냈다.

왼쪽: [전시중] <레기나 코르디움>, 가브리엘 로세티, 1860 (전시중); 오른쪽: <여성의 이상적 초상화>, 산드로 보티첼리, 1480

가브리엘 로세티의 <레기나 코르디움>, 번역하면 '심장(마음)의 여왕'은 이전 시기의 현실을 옮겨놓은 듯한 여성의 초상이 아닌 보티첼리와 같은 다소 어색해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밀레이와는 다르게 로세티는 라파엘로 이후 정형화된 화풍 자체에 도전하기 위해 라파엘로 이전의 화가들에게서 그 해답을 직접적으로 찾았고 그의 화풍에서 이탈리아의 콰트로첸토(Quattrocento, 1400년대)의 여러 화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존 러스킨은 라파엘 전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모든 라파엘 전파의 풍경의 배경은 야외에서 그 자체의 사물로부터 마지막 터치까지 그려진다. 모든 라파엘 전파의 인물은 표현을 어떻게 연구하든 살아있는 사람의 초상화이다.>


러스킨이 발견한 것과 같이 그들은 사물과 인물의 살아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시도를 했고 이것은 이후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게 된다.

[전시 중] <브레너 빙하>, 존 싱어 사전트, 1909

존 싱어 사전트(Joh. Singer Sargent, 1856-1925)는 미국 초상화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동시에 그는 미국의 인상주의를 이끌었던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유럽 여행을 하던 1909년 스위스의 브레너 빙하를 방문하다가 한 폭의 그림을 남긴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브레너 빙하>에는 그의 인상주의적 화풍이 드러난다. 너와집과 같은 나무판자를 지붕으로 만든 목재 주택 뒤로 보이는 설산의 모습에서 이전 화가들의 이루어놓은 정교하고 세밀한 표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사전트는 얼음과 눈으로 덮인 표현으로 흘러내리는 빛의 큰 덩어리를 던져놓을 뿐 세밀한 빛의 반사와 명암효과에는 관심이 없다. 이러한 인상주의 작품은 오히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흐릿한 시선으로 볼 때 디테일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인상주의적 특징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다음 관인 [IV. 인상주의 이전 -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IV. 인상주의 이전 -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36)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

신고전주의의 경직되고 틀에 박힌 양식이 염증을 느낀 들라크루아는 바로크적인 빛의 효과와 역동적 구도를 연구한다.

<사자에 대한 연구>, 외젠 들라크루아, 연도미상

그는 동물의 자세에 대한 스케치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신체의 표현을 연구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 등을 주제로 삼는 반면 이 둘을 비판하고 등장한 사실주의(realism) 화가들은 예술가가 처한 현실을 예술로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그들은 당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일상적 공간에 대한 묘사에 주저함이 없었다. 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구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누구보다 현실성에 대한 고민을 예술의 중심에 두었다.


<한 세기의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과거나 미래 세기의 모습을 재현할 수 없다.>


쿠르베는 철저히 현재를 그리고자 했다.

[전시 중] <에트르타 백악 절벽>, 구스타브 쿠르베, 1870

쿠르베는 에트르타 백악 절벽의 모습을 10여 점의 작품으로 그려낸다.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대와 다른 날씨에 반복해서 화폭에 담았다. 그가 그린 것은 에트르타 백악 절벽 자체의 재현이 아니다.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에트르타 절벽을 비슷하게 담은 작품을 고르는 것이 쿠르베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오늘, 지금, 이 순간 눈에 들어온 에트르타 절벽의 전경을 담고자 했다. 이것은 인상주의자들이 찰나의 순간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대한 인상을 재현하려고 하는 순간의 미학을 공유한다.


2부는 <V. 인상주의를 중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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