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mo ludens Feb 29. 2024

"The escape"에 대한 해석

- 감염병의 진짜 적 -

조르죠 아감벤은 그의 책 "얼굴없는 인간"에서 전염병(L'epidemia)의 어원을 Demos 즉, 그리스어로 정치적 존재로서의 민중에 기인한다고 밝힌다. 호메로스 찬가에서 Polemos Epidemios 는 내전을 뜻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의 사유의 조각을 공유해봅니다.


전염병은 사실 굉장히 정치적인 개념이자, 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 비정치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사태를 꼼꼼히 분석한 일부 정치과학자들은 실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염병이 전통적인 전쟁의 형태인 세계대전을 대체한 세계내전이라고 보고 있다. 모든 국가와 민족은 이제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대상은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보이지 않는 적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Giorgio Agamben, 얼굴없는 인간, p. 95)


기후문제와 자연상태로의 회귀


브뤼노 라투르 (Bruno Latour) 는 팬데믹은 앞으로 다가올 기후문제에 대한 대규모 리허설이라고 했다. 대재난 (catastophy) 은 그리스어의 kata (아래로, 낮은) + strephein (변화하다) 의 합성어로 대격변, 몰락을 뜻한다. 인간은 외적 환경의 변화가 극변할 때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을 타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드러낸다. 기후의 변화가 생활을 생존으로 바꾸어 일상을 비상상태(예외상태)로 만든다. 여기서 생필품은 생존품이 되고 그것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이 된다. 모든 재화를 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우리는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로 되돌아 가고 말았다.


리허설


인류는 대재난으로서의 기후문제를 경험하지 못했다. 아니, 이제 막 경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위기를 초래한 몇 번의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질병에 의한 재난이었다. 페스트가 창궐하자 사람들은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기후문제에서 자원을 둘러싼 혈투가 벌어지듯 감염병은 타인 자체를 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Covid-19 을 겪으며 공동체는 셧다운의 필요성을 자각했다. 내 이웃은 이제 페스트에서 질병을 옮기는 쥐처럼 기피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격리를 통한 생존법은 축적한 자원의 양을 생존확률로 여기게 만들었다. 상점에 구매 제한이 걸리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축적하라! 상점에 모인 이들은 이미 홉스의 '자연상태'에 돌입했다.



각성과 망각

사회적 연대는 문제를 몽상적 해결책으로 느끼게 하기도 하고, 위기의식을 망각하게 하기도 한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돌입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를 믿을 수 있는가? 이 와중에 독점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기업과 개인에 대한 비토 정서는 홀로 생존하려 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으로, 다시 경각심을 갖지 못한 이들에 대한 혐오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다시 연대의 필요성을 각성하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에서의 책임감을 저울질하게 된다.

일정시간 지속된 문제점은 다시 평균을 이루고 정상상태인 듯한 착각을 만들어낸다. 다수의 시민들이 함께 공유한 문제는 위기감으로 번지고, 위기감이 널리 퍼져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 상황 자체가 받아들이기 수월해진다. 옆 사람의 불행은 내게 안도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유된 불행의 감정은 불행을 디폴트 값으로 만들어 무감각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 속에서 위기감은 망각된다.



숨겨진 적

아감벤이 말하는 전염병의 숨겨진 적은 '자기자신 속'에 있다. 우리 안에 있다. 누구인지 모른다. 모두가 '그'일 수 있다. 전염병의 실체는 '불신'과 '의심'을 통한 공동체의 분열과 와해이며, 이것은 인류가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나약한 '약속'에 불과했음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만든 약속은 어린시절 새끼손가락을 걸었던 그것보다 훨씬 일시적이고 위선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제 붕괴된 신뢰는 이전의 모든 가치들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게 했으며 새로운 가치정립을 요구한다.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요원해보인다. 각자가 가진 의견은 공유될 수 없는 정보에 기반하고 있기에 서로간의 설득은 불가능하다. 


도피처는 어디에?

https://youtu.be/Tg2NBn2x6w0

유튜브에 공개된 짤막한 영화 Escape 에서는 도피처를 제시한다.

제시된 도피처는 결국 자신의 기억 속이다. 자신의 기억 속으로 숨어들어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영원한 동경이, 그 노스텔지어가 주인공 램퍼트가 선택한 유토피아다. 

이 아이러니, 한 때의 피하고 싶었던 일상이 그토록 바라는 이상향이 되는...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다른 해법을 생각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Dinner for few" (소수를 위한 만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