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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Jan 22. 2020

넷플릭스드(Netflixed) 넷플릭스라는 신화의 탄생

지나 키팅.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

『넷플릭스 스타트업의 전설』의 원제는 Netflixed다. 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비디오 유통 산업의 최강자였던 블록버스터가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넷플릭스로 인해 파산에게 이르게 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용어가 되었다.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블록버스터 뿐 아니라 넷플릭스가 진입한 모든 국가에서는 넷플릭스가 자국의 미디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높다. 가령 차우진은 넷플릭스가 국내에 미친 영향에 대해 ‘한국이 넷플릭스 당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다(차우진, 2019. 3. 5, 「한국이 넷플릭스 당하다」, 『Noblesse』.).       


우리나라는 사정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미국 다음으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경우 넷플릭스를 포함한 미국의 SVOD 스트리밍 서비스들의 가입자 점유율이 자국의 동영상 플랫폼 가입자 점유율을 넘어섰다. 물론, 이것은 넷플릭스가 진입한 시기와 문화적 할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영미권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할 수 있다. 2016년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했을 때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연착륙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고, 나 역시 넷플릭스가 미칠 영향에 대한 전망에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그 우려(?)를 불식하고 국내에서 넷플릭스는 연착륙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Netflixed는 넷플릭스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블록버스터를 물리치고 비디오 유통 시장의 최강자가 되었는지에 관한 과정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은 한 사업자의 행보를 관찰하면서 전체적인 구도를 조망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라는 기업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찬 책도 아니다. 이 책의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독단에 가득 찬 인물로 묘사된다. Netflixed는 넷플릭스와 리드 헤이드팅스의 성공에 관한 얘기지만 미담에 관한 얘기도 아니다.      


넷플릭스가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로 성공했다는 얘기가 담겨 있는 책은 넘치고 또 넘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발언과 관점이 담긴 책은 기 힘들다. 넷플릭스의 대변인 조너선 프리드랜드는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가 가진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우리의 진정한 장점은 완벽한 콘텐츠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남들보다 효과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375쪽).” 넷플릭스의 상징이 된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는 물론 큰 장점이지만 넷플릭스가 그것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책의 종반부는 헤이스팅스가 우편 대여 서비스 독립을 독단적으로 추진했던 실수로 인해 넷플릭스가 어려움에 처한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2013년까지를 다루는 이 책은 넷플릭스가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을 제작하면서 이 위기를 넘어서고 있지만 정점이었던 2011년의 위상을 회복하지는 못했다고 하면서 마무리된다. 그럼 넷플릭스는 그 위기에 발목이 잡혔을까? 2019년 3/4 분기 기준으로 넷필릭스의 글로벌 가입자는 1억 5천만명을 상회했다. 어쩔 수 없는 성장 정체에 발목이 잡혀 있지만 미국에서의 가입자는 6,000만 명이 이상이다. 2020년 오스카 작품상의 주인공은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아이리시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리시 맨>을 포함해서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는 무려 24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있다. 현재 넷플릭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월정액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동영상 플랫폼이자 최상위급의 비평적 가치를 지닌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가 되었다.      


올 연초에도 어김없이 넷플릭스가 애플이나 아마존에 인수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내일 팔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선점한 것처럼 보이지만 OTT 스트리밍 시장으로 진입한 경쟁자들은 모두 탄탄한 배경을 지닌 공룡들이다. 넷플릭스는 앞으로 아이언맨(디즈니)과 경쟁해야 하며, HBO와도 스트리밍 시장의 왕좌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자신들의 단말기를 사면 무료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플과도 싸워야 한다.      


넷플릭스의 미래는 불투명 했고, 앞으로도 그렇다.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를 인수 했다면? 애플이 아이튠즈 모델 보다 넷플릭스와 같은 SVOD 시장에 집중했더라면? 디즈니가 콘텐츠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데 주력하지 않고 넷플릭스를 인수하거나 본인들이 좀 더 일찍 SVOD 시장에 진입했다면? 2008년 경제 위기로 인해 미국인들의 소비 지출이 줄지 않았다면? 수많은 가정 중 하나만이라도 실현되었더라면 지금의 넷플릭스는 없었을 것이다. 향후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키팅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담겨 있는 진실 뿐이다. “자유시장경제는 그렇게 굴러간다. 훌륭한 제품, 건전한 재무구조, 체계적인 경영 능력을 갖춘 회사가 고객을 차지하고 뒤쳐진 경쟁사들을 물리친다(368쪽).”     


Netflixed는 넷플릭스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유용한 책이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넷플릭스라는 회사의 본질은 아직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3년에 넷플릭스는 이미 오리지널과 글로벌화라는 두 가지 확고한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 책을 다 읽기 부담스럽다면 필요한 부분만을 보거나 에필로그만이라도 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넷플릭스라는 기업이 언젠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을 담아내고 행간을 잘 포착하고 있는 Netflixed는 남아서 우리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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