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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Jan 19. 2020

‘구독 모델’은 비즈니스의 미래인가, 새로운 신화인가?

티엔 추오, 게이브 와이저트,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 서울: 부키.

티엔 추오(Tien Tzuo)와 게이브 와이저트(Gage Weisert)가 저술한 『구독과 좋아요의 경제학: 플랫폼을 뛰어넘는 궁극의 비즈니스』의 원제는 Subscribed이다(원제를 ‘서브스크라이브드’와 같이 살렸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더 좋지 않았을까?). 이 책은 티엔 추오가 포춘(Fortune)을 통해 소개한 바 있고, 본인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 주오라(Zuora)에서 제안한 구독 경제 모델의 유용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전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 혹은 구독 모델이 갖는 장점은 분명하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제품 경제(product economy) 모델의 치명적 약점인 수익의 불안정성이 초래할 수 있는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구독 모델은 월정액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구독 모델이 각광 받는 이유는 바로 데이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것이 데이터로 축적되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용자가 선호하는 서비스 및 콘텐츠를 지금까지 이용자가 이용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별다른 인지적 노력 없이 사업자가 맞춤형으로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구독 서비스에 대해 만족도가 높고 신뢰한다면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 윈-윈 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Subscribed에서는 구독 모델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로 가격책정과 패키징을 꼽고 있다. 가령 넷플릭스를 예로 들어 보자. 넷플릭스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월 14.99달러를 지불 해야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월 14,500원을 지불하면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비싼 가격이지만 지금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아이리시 맨>과 <결혼이야기>를 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렇게 두 편의 영화만 볼 수도 있더라도 14,500원 정도는 충분히 지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패키징에는 콘텐츠와 추천 시스템, 결합상품까지 다양한 방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패키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Subscribed에 제안하는 구독 모델은 확실히 사업자, 이용자 모두에게 유용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사업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유용한 서비스를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이용자가 거기에 만족한다는 전제가 충족될 때 가능한 얘기이다. 이러한 전제가 충족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입했을 때 동영상에 대한 지불의사가 낮은 국내의 특징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우리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정확한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넷플릭스는 이러한 전망을 극복하고 국내에서 연착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아닌가. 넷플릭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수 있다). 이용자의 지불의사를 끌어내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월정액 모델을 이용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또다시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수많은 콘텐츠는 정말 이용자에게 모두 필요한 것일까? 월정액 OTT를 이용하는 이용자 중 일부는 OTT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제공하는 수많은 콘텐츠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심지어 넷플릭스는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콘텐츠 숫자가 많은 플랫폼이 아니다). 구독 서비스 활성화는 소비자 입장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부축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구독 서비스 모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에 충분히 만족하는 이용자들 조차 맞춤형 서비스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구독 서비스 모델은 한동안 비즈니스 모델의 대세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소비자에게 주는 유용함이 큰 것도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구독 모델에 대해 쏟아지는 상찬 중 상당 수는 정치적인 수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독 모델을 직접 운영하고 있거나 구독 모델을 컨설팅해주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모델의 장점을 어느 정도는 포장해서 말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나에게 충분히 유용함을 주는 서비스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소비자다. 과도한 관심과 상찬의 이면에는 항상 특정 패러다임이나 모델을 신화로 만들고자 하는 전략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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