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에브리맨』. 파주: 문학동네.
“만에 하나 자서전을 쓰는 일이 생긴다면, 그 제목은 『남성 육체의 삶과 죽음』이라고 부를 터였다(58쪽).” 1933년에 태어나 2018년 생을 마친 필립 로스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더라도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기 어려울 만한 거인이다. 그를 대표하는 미국 3부작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은 모두 한 남자가 어떻게 파멸에 가는지 혹은 어떻게 인생에 오점을 남겼는지에 관한 서사들이다. 『휴먼 스테인』의 stain은 얼룩지게 하다, 더럽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로스는 그렇게 더럽혀질 수밖에 없는 남성의 삶을 다룬다. 그리고 예외 없이 그 남성의 삶 속에서 육체의 쇠락은 결정적인 치명타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162쪽).”
불행한 결혼을 경험했고, 건강 상의 어려움 때문에 술을 멀리하고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념해 온 것으로 알려진 로스의 삶과 『에브리맨』이 무관할 리 없다.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로스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화자 주커먼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나를 서술하는 전지적 시점의 서술자가 담담하게 ‘그’에 대해 얘기할 뿐이다.
주인공 ‘나’는 그림을 전공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광고업계로 진출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나는 세 번의 결혼에 모두 실패한다. 첫 번째 결혼은 배우자와 잘 맞지 않아서였고, 두 번째 결혼은 다른 여성 때문이었다. 물론, 첫 번째 결혼 역시 다른 여성과 관련되어 있다. 세 번째 결혼은 충동적 결정이 부른 참극이었다. 그는 가장 좋은 조력자를 성적 충동 때문에 잃어 버린다. 그리고 그의 비극이 시작된다. 몸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은퇴 후 젊었을 때 꿈꾸었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며, 가르치며 평온하고 안정된 일상을 꾸려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저 유명한 명대사가 등장한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86쪽).” 훌륭한 번역으로 필립 로스를 많은 한국 독자에게 소개한 정영목은 이 문장에 대해 필립 로스의 작업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물론, 나도 동감한다. 나는 여기에 더해 저 문장이 필립로스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인생에서 행운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묵묵히 다가오는 일을 받아들인다고.
인생의 파고는 어찌할 수 없다. 그는 여러 차례의 심장 수술 끝에 71세로 삶을 마친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188쪽).”『에브리맨』은 그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가게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삶을 의미하는 은유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나 살아가다가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일로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로스 보다 잘 쓸 수 있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