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윤리의 길항작용, 인식을 부조하는 서사실험

은희경. 『태연한 인생』. 파주: 창비.

by 노창희

신형철이 『태연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인식적 가치’라고 했을 때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이 작품이 가진 인식적 가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지면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신형철, 2012. 7. 6. 「예리하고 우아한 어떤 ‘인식’」, 『한겨레21』.). 물론 그의 다른 글(신형철, 「신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에서 소설이 갖는 인식적 가치에 대해서라면 아쉬움 없이 배웠으니 더는 불평할 이유는 없으리라(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형철이 쓴 『태연한 인생』이 갖는 인식적 가치에 대한 보다 긴 글을 읽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다).


『태연한 인생』을 여러 차례 읽은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 소설에 접근해 보고 싶다. 『태연한 인생』은 인식적 가치를 남기기 위해 정형적인 서사를 포기한 소설이라고. 이 소설을 인상적으로 읽은 독자라고 할지라도 이 소설에서 중요한 서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분량 측면에서 보면 요셉의 서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하지만 서사의 밀도나 이 소설의 핵심을 고려해 볼 때 류와 류의 어머니의 서사가 갖는 비중을 분량이 적다고 해서 요셉의 서사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는 어렵다. 요셉과 류가 엮여 있는 것은 둘 사이의 짧은 연애인데 이 소설은 이 연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하지 않는다. 다만 이 연애에 대한 류의 태도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물론 이 태도에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매혹이 사라진 이후의 사랑은 어머니처럼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264쪽).”).


류의 아버지가 ‘매혹’을 상징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명확해 보인다. 그럼 류의 어머니의 삶은 무엇으로 규정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패턴이나 서사라기보다는 ‘윤리’라고 규정하고 싶다. 여기서 윤리는 반드시 좋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사회적 처벌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계적 성격도 지니고 있는 것이 내가 류의 어머니가 상징하는 세계를 표현하고자 할 때 동원한 윤리라는 개념이다. 류의 어머니는 잠시 잠깐의 매혹 때문에 아버지에게 이끌리게 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녀는 고독해지고 고통을 받는다. “고통은 관계의 고독이고 고독은 개인됨의 고통이었다(77쪽).” 관계의 고독은 관계를 맺은 이의 배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류의 아버지는 매혹에만 철저히 집중함으로써 패턴과 보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지만 류의 어머니가 요구하는 배우자로서의 책무를 철저히 외면한다.


문제는 류가 아버지의 삶과 어머니의 삶 모두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혹의 세계는 틀리고 윤리의 세계는 옳다는 식의 이분법은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인식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태연한 인생』은 매혹과 윤리가 갖는 관계에 관한 소설이다. 류의 어머니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선택을 했지만 아버지의 매혹을 쉽게 부정하지 않았다. 류의 아버지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인생은 매혹으로만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태연한 인생』은 결과적으로 매혹과 윤리 양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그 어려운 관계를 인생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어떻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소설이다. 이를 매혹과 윤리의 길항작용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과한 것일까?


그럼 다시 『태연한 인생』의 서사로 돌아와 보자.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몇 가지 문장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265쪽).”


위의 문장들에는 『태연한 인생』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태연한 인생』은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다. 은희경이 의도한 것이건 그렇지 않은 것이건 균형 잡히지 않은 이 소설의 서사는 독자가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인식적 가치에 집중 하도록 만든다. 물론, 독자가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간단치 않은 전언에 서서히 녹아드는 것은 『태연한 인생』의 형식적 실험이 지루하지 않고 정교하기 때문이다. 『태연한 인생』이 전하는 인식적 가치에 설득된 나는 이 소설의 전언을 ‘매혹과 윤리의 길항작용’이라고 정리하고는 이 인식적 가치가 형식적 실험 덕분에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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