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이별을 위한 지난한 지속

권여선.「삼인행」. 『안녕 주정뱅이』. 파주: 창비.

by 노창희

「삼인행」은 이별을 앞둔 주란과 규 부부의 이별 여행을 다룬 단편이다. 이 이별 여행에 훈이 동참한다. 아마도 셋은 대학교 동창이었던 것 같다. 박종철 열사 얘기나 지금은 잘 만나지 않는 선배가 자신의 말만 내뱉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험담하는 걸로 봐서 이들은 아마 50대를 향해 가거나 50대 언저리에 놓여 있는 중년들일 것이다. 주란과 규가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도입부에 드러나 있으니 이 단편에서 중요한 것은 왜 주란과 규는 헤어지게 되었는지와 둘의 이별 여행에 꼭 훈이라는 목격자가 굳이 필요했을까라는 것이 될 것이다.


권여선 소설에서 흔치 않게 발생하는 문제이지만 이내 배가 고파지는 소설이다. 원주에 있는 황기삼계탕부터 시작해서 경포해변에 있다는 수제버거에 홍게, 황태국까지 실제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 같은 식도락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로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훈은 1박 2일의 이별여행에서 규와 주란이 왜 이렇게까지 식도락에 집착하는지 의아해한다. 어쩌면 규와 주란에게는 식도락 말고는 더는 공유할 무엇이 남아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규와 주란은 출발하면서부터 마지막 점심 자리까지 끊임없이 다툰다. 그야말로 지난한 부부관계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규와 훈 사이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자기 말만 늘어 놓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선배를 욕하는 훈에게 규는 네가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면 함부러 얘기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훈과 규의 대화는 규와 주란의 대화 못지 않게 지난해 진다. “옅은 취기로도 그들은 위태했다(73쪽).”


규와 주란이 헤어지게 된 원인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규의 알콜 중독과 술을 마시면 제3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규의 증세가 규와 주란이 이별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정도는 추측해 볼 수 있다. 관계 자체는 취약한 것이다. 그렇게 취약한 관계는 지난함이 지속될 때 비로소 무너진다. 훈이 차 속에서 해의 방향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관계의 막바지에서 느낄 수 있는 회한의 감정이다. “갑자기 뭔가 중단되었을 때에야 그것의 지속을 얼마나 갈망해왔는지 알게 되듯, 훈은 잘린 시간의 단애 앞에서 화들짝한 분노와 무력한 애잔함에 사로잡혔다(53쪽).”


규와 주란은 곧 이별할 것이다. 훈을 포함해서 함께 여행을 도모한 삼인은 동시에 어떠한 이별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들을 끈질기게 사로잡아온 젊은 시절 한때의 어떠한 열정일 수도 있고 청춘 자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별의 징후는 다가오는데 그것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것이다. “눈 내리는 창백한 회색 풍경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거라곤 세로로 비스듬히 뻗은 길의 윤곽선과 왼편에 있는 작고 네모난 창고, 오른 편의 널찍한 타원형 텃밭 정도였다(73쪽).” 확실한 것은 관계는 지난하게 지속될지라도 언제든 찰나에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관계의 취약성에 앞에서 인간은 항상 무력할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서둘러’ 흘러가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