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이론의 지도 그리기

오민석.『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by 노창희

교내 방송국 생활로 인해 학과 공부는 뒷전이었던 내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비평이론 수업이었다. 딱히 큰 뜻을 두고 과목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물론, ‘비평’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문학비평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대중문화 전반에 관한 비평에 관심이 있기는 했다. 첫 수업시간 주교재와 부교재가 모두 영어이며, 주교재는 나도 풍월로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던 대가들이 쓴 글을 원서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다른 과목으로 수강신청을 정정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왠일인지 나는 수업을 그냥 듣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그 수업을 듣지 않았으면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물론 그 후 나는 문학과는 별 관련이 없는 미디어 분야를 공부하게 되었으며, 비평과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산업이니 정책이니 하는 것들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업시간에 배운 비평이론들의 영향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해 오던 중에도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과도 같이 문학에 대한 미련만은 버리지 못해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충실한 문학 독자가 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다시 비평이론 수업으로 돌아오자면 2002년 1학기 내 생활은 비평이론 수업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원서 아티클이 정해지면 도서관으로 가서 번역본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었다. 절판된 번역본들이 많았지만 도서관에서 대출하면 되었으므로 다행히 대부분 번역본을 구하는 데 성공했던 기억이다. 게오르그 루카치, 포스트 구조주의, 자크 라캉과 같은 이름들은 비평이론 수업을 들은 후에 친숙해진 이름들이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그 이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원우들과 책을 읽는 세미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연초에 당시 부교재로 쓰였던 라만 셀던, 피터 위도우슨, 피터 브루커의 『현대 문학 이론 개관』을 다시 붙들고 있다가, 이제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읽으면 되겠구나 하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그 수업을 진행하셨던 오민석 교수님께서 2017년에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를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머리말에도 인용되어 있는 저 유명한 루카치의 문장을 나는 오민석 교수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하늘의 빛나는 별이 모든 가능한 길들의 지도(map)인 시대는 행복하다.” 불행히도 현대 혹은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는 빛나는 별이 우리의 나아갈 바를 일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문학이론일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2020년대는 바야흐로 비평의 시대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면 비평가가 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감상만으로도 훌륭한 비평이 가능하겠지만 수없이 존재하는 이론적 자원들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비평이라는 행위에 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비평에서부터 페미니즘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이 책은 비평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다.


문학비평은 비평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비평에서 시작해서 영화비평과 같은 대중문화 비평을 병행하고 있는 논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에서 드러나듯 문학비평이론은 문학뿐 아니라 사회 거의 모든 분야를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문학이론이 이렇게 발전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 원인은 문학이론이 ‘문학’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고, 문학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모든 것’을 다루는 작업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15쪽).”


이 책의 미덕은 우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론들에 대해 독이성이 높은 문체로 쉽게 설명하면서도 말맛이 있는 저자의 문체에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저자가 이론들을 적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미덕은 방대한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유행에 민감한 사회이고 문학, 문화이론들도 유행에 민감한 것이 현실이다. 어느 시기에 들뢰즈 없이는 토론이 불가능하고 어느 시기에는 지젝을 모르면 무시당하기 십상이고, 최근 몇 년간은 랑시에르 없이는 중요한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분위기가 아주 없었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는 이론도 유행을 타는 시대에 이론의 체계를 독자가 비교적 알기 쉽게 소개해 준다. 문학이 아니라 인문학 혹은 대중문화 전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주요 이론과 저자들의 주요한 책이 소개되어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여러 가지 핑계로 오프라인으로 제대로 인사를 드린 적도 없는 불충한 제자이지만 교수님께서 남기신 영향은 참으로 크다. 페이스북이라는 매체 덕분에 온라인으로나마 안부를 여쭐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 확실히 미디어 기술의 발전이 갖는 장점이 상당함을 체감한다. 사심 가득한 감상이지만 이 책이 그만큼 유용할 것이라는 점만은 자신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삶의 존엄함을 스스로 지켜내는 미니멀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