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김세희.『항구의 사랑』. 서울: 민음사.

by 노창희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지 않은 입장에서 얘기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어떤 소설들은 작가가 한 시절에 관해 소설로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어서 썼다고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가령, 이승우의 『생의 이면』이나, 정이현의 「삼풍백화점」같은 소설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은 자서전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또는 지우면서-확실히 깨달은 건, 소설은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최선의 해석, 최선의 이해라고 말할 수 있다(「작가의 말」, 170-171쪽).”


김세희의 『항구의 사랑』은 다분히 퀴어적이지만 전형적인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아마 작가 본인도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지점이 있을 텐데 그 시절 주인공인 내가 사랑했던 민선 선배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이것을 규명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소설을 통해 명확하게 규명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항구의 사랑』은 주인공인 나를 포함하여 중고교 시절 동성인 여학생을 동경했거나 더 나아가 연인 관계를 맺었던 소녀들의 서사이다.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나가 민선 선배를 좋아하고 그와 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를 다룬다. 물론, 나와 민선 선배 둘만의 서사는 아니다. 나를 스쳐 갔던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핵심은 주인공인 나의 성적인 정체성이 무엇인가라기 보다는 청소년 시절 우리를 매혹에 빠지게 만드는 ‘사랑’의 정체일 것이다. 사랑을 강조하고 있으나 『항구의 사랑』은 청소년 혹은 대학시절에까지도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동료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에 ‘이반’이라는 것에 강하게 이끌렸던 내가 민선 선배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것은 과연 온전히 개인적인 체험인 것일까?


서울로 대학에 진학한 나는 서울 출신의 세련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소위 ‘세련됨’이라는 것을 배운다. 근데 그것은 정말 세련됨의 온전한 기준인 것일까? 또래 집단으로부터 받는 규범적 압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것이며, 그 영향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게 된다.


『항구의 사랑』은 잘 읽히는 소설이다. 나는 그 자체로도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은 생생하며, 나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를 다룬 서사의 흐름도 매끄럽다. 아마도 인상적인 성장소설 중 하나로 거론될 작품이 될 것 같다. 다만, 『항구의 사랑』에서 다룬 사랑에 대해 한발 짝 더 나아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것은 작가 자신도 그것의 정체에 대해 명확히 규명해 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의 문장을 인용하며 마친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에 관해서 썼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그 모래사장에서 처음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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