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로스『네메시스』. 파주: 문학동네
『네메시스』를 두 번 읽은 독자라고 하더라도 아널드 메스니코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네메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화자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분량으로 봤을 때 1/3도 차지하지 않는 3부에서야 등장하는 아널드 메스니코프를 화자로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거장의 놀라운 기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떠올리게 된 『네메시스』를 다시 읽고 난 이후 아널드 메스니코프의 역할은 화자로서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불행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네메시스』는 아직 폴리오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기 11년 전이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4년 폴리오 바이러스로 인해 삶이 망가진 버키 켄터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감독하던 버키 켄터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퍼뜨리러 왔다던 이탈리아인 10명을 물리치면서 지역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자신의 감독하에 있던 아이들에게서 폴리오 바이러스 증세가 나타나자 고뇌에 빠진다.
이 상황에서 약혼을 준비하고 있었던 약혼녀 마샤가 위험한 뉴어크에 있지 말고 자신이 있는 인디언 힐로 오라고 권유한다. 책임감이 강한 청년이었던 버키 켄터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회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관리하에 있던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쏟아내는 부당한 비난을 그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한, 버키 켄터 자신도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인디언 힐로 떠난다.
인디언 힐에서 마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버키 켄터에게 어두움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그가 다이빙을 가르쳐줬던 아이가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부터였다. 정황상 자신이 폴리오 바이러스를 옮긴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버키 켄터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드러나고 평생 장애를 앉고 살아간다. 버키 켄터의 장애를 감당하고서라도 그와 결혼하고자 했던 마샤를 떠나보내고 버키 켄터는 외롭게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한다.
버키 켄터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앨런의 죽음을 목도하면서부터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회의한다. 인디언 힐에서 마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마샤와 하느님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종교적인 문제를 떠나 『네메시스』에서 아니 필립 로스의 모든 소설에서 인간의 삶에 부여된 우연에 의해 발생한 재앙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어렵다. 버키 켄터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그는 자신의 선의와 상관없이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자신이 퍼뜨렸다고 생각하는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의 감염에 대해서도 과연 그의 책임인지 알 수 없다. 설혹 그 때문에 폴리오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버키 켄터에게 책임을 붇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마샤와의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자신 때문에 평생 폴리오 바이러스로 인해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속죄한다. 대속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대신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고통이 경감될까? 27년 후인 1971년에 재회한 아널드 메스니코프는 버키 켄터가 관리했던 아이들 중 하나였으며 버키 켄터와 같이 폴리오 바이러스에 걸려 장애를 앉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버키 켄터는 아널드 메스니코프 역시 자신에게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행한 숙명을 받아들이는 버키 켄터의 방식과 아널드 메스니코프의 방식은 전혀 다르다. 버키 켄터는 자신의 불행을 방치하는 쪽을 택했고(아마도 그것이 대속의 삶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아널드 메스니코프는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널드 메스니코프는 버키 켄터를 격렬하게 비난하는데 이건 버키 켄터의 삶의 방식을 아널드 메스니코프는 받아 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삶은 처음부터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도둑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폴리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폴리오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도 버키 켄터의 뜻과는 무관하다. 이 책의 제목이자 필립 로스의 화두가 담겨 있는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복수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위퀘이크를 떠나 인디언 힐로 간 것이 응징을 받을 만큼의 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버키 켄터를 불행하게 만든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불운이라는 우연과 잘못된 대속의 삶을 택한 필연이 결합 되어 벌어진 결과일 것이다. “그는 비극을 죄로 바꾸어야만 했다. 벌어진 일에서 필연성을 찾아야만 했다(266쪽).”
필립 로스는 작가로서는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갖지 못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노벨상 정도일 것이다. 젊어서부터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았으며, 『미국의 목가』, 『휴먼스테인』과 같은 대표작들은 영화화 될 만큼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생전에 그는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으며, 결혼 생활도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자서전 『사실들』에는 성공한 소설가 필립 로스가 아니라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우연에 발목이 붙잡혀 있는 불행한 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네메시스』가 던지는 우연과 필연의 딜레마적 조합으로서 삶이 갖는 속성은 필립 로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채 소설이라는 물음의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제 끔찍하도록 잔인한 소설을 쓰는 필립 로스의 신작을 더는 만날 수 없다. 『네메시스』는 필립로스가 쓴 마지막 장편 소설이다. 정영목이 옮긴이의 말에 쓴 다음의 문장을 인용하며 마친다. “마지막 소설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로스답다는 이야기는 덧 붙이고 싶다. 늘 하던 일을 하다가 그럴 만한 때가 되면 그냥 그만두는 것이야말로 왠지 로스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는 면모인 듯하기 때문이다(2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