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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23. 2020

코로나, 위험 그리고 미디어

 2018년에 작고한 거장 필립 로스의 마지막 장편 『네메시스』는 1944년 당시 감염경로를 알기 어려웠던 폴리오바이러스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영웅적 청년 버키 캔터에 관한 이야기다. 폴리오는 감염되게 되면 척수성 소아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폴리오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위퀘이크에서 놀이터 감독을 하던 버키 켄터는 폴리오를 퍼뜨리기 위해 왔다는 이탈리아 남자아이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맞서면서 지역의 영웅이 된다. 하지만 그 후 자신의 보호 하에 있던 아이들에게서 폴리오바이러스 증세가 나타나고 자신도 폴리오바이러스에 걸려 전도유망했던 청년 버키 켄터의 삶에 어둠이 드리운다.


『네메시스』에서 폴리오바이러스가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감염경로를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고, 치료가 어려워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이유와 같다. 울리히 백은 『위험사회』(홍성태 역, 서울: 새물결)에서 “위험은 예방될 수 없는 미래를 의미한다(73쪽)”고 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통제는 물론 예측조차도 어렵다는 점에서 재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같은 무서운 질병이 전세계로 확산된 배경 중 하나는 글로벌화다. 현대사회에서 지구인이 공동번영하기 위해 글로벌화는 필수적이지만 재난이 닥쳤을 때 전세계 그 누구도 재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코로나로 인해 미디어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여러 회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고, 대학교에서는 강사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권고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 상황은 미디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의 범위를 늘리고 있고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현대사회가 수립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 진화로 인한 미디어의 디지털 대전환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재난 국면에서의 대응 시스템 구축과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될 것이다. 워라벨이라는 용어가 주목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대인에게 일과 여가는 삶을 이끌어나가는 두 축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미디어 시스템은 일과 여가 모두에 깊숙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는 미디어 소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코로나와 미디어 소비 간의 관계에 대해 다룬 보도들을 보면 코로나가 미디어 소비를 늘려 미디어 산업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점이 우세하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관람해야 하는 영화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최대의 수혜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넷플릭스 조차 코로나19가 마냥 달가운 일일 수만은 없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가령, 다나 펠드만(Dana Feldman)은 코로나로 인한 경기불황이 넷플릭스의 글로벌 가입자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Feldman, D. 2020. 3. 10. Three reasons Coronavirus is bad business for netflix. Forbes.). 글로벌 가입자들이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유료 구독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광고를 하지 않는 유료 구독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 이용자의 이용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수익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상황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자에게 재난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상존하는 위험 속에서 부득이하게 이동을 해야 하고 답답함을 견디며 실내에서 여가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이 상황 속에서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재택근무, 온라인 강의 등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디어는 이제 개별적인 분야라기보다는 전 분야에 걸쳐 있는 거대한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디어를 통해 재난 대응 체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해 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는 것 뿐 아니라 향후 발생할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용자의 미디어 이용량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은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상 시청, 게임을 포함한 미디어 소비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은 매체소비가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매체를 이용하더라도 그것이 이용자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만큼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오랜 시간 미디어를 소비하게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솔루션을 사업자가 선제적으로 내놓을 필요도 있다.

이용자 스스로도 현재의 매체 환경을 정확히 지각하고 이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와 비교할 때 매체에 대한 선택권은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편향적으로 매체이용을 할 수밖에 없다. 매체 이용 관습이 본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가도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미디어 소비가 여가의 중심이 된 상황에서는 그에 대한 자체적인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미디어 이용이 일과 여가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 현실을 어떻게 바람직한 미래로 바꾸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코로나로 인해 초래된 재난상황은 우리에게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글은 같은 제목으로 3월 18일에 <아주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0031809040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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