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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30. 2020

‘케이’와 ‘팝’의 결합이 갖는 딜레마

이규탁.『갈등하는 케이, 팝』. 서울: 스리체어스.

음악산업은 미디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고 문화산업 분야로 국한해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적인 가치를 떠나 문화적인 가치로만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분야라고 얘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음악산업과 관련하여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깊이 있게 연구할 기회를 가져 보지 못한 입장에서 『갈등하는 케이, 팝』과 같은 책이 출간되면 이유 불문하고 주문부터 하게 된다. 더욱이『케이팝의 시대』를 재밌고도 유익하게 읽은 입장에서 이규탁이 최근에 출간한 『갈등하는 케이, 팝』을 주문하는 것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나는 90년대 한국음악의 팬이고 2000년대로 넘어오면 사실 이용자로서 한국음악에 대해 크게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지금 소위 얘기하는 케이팝이 누리고 있는 국제적 위상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난감하기까지 하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BTS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BTS는 왜 이렇게 인기 있는지에 대해 판단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상품이란 단순히 좋다는 감상을 가지고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또한, 산업적인 차원의 논의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영향도 중요하다. 사회, 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영향이 산업적인 성패와 결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 음악을 포함한 문화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케이팝이라고 부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용어가 가지고 있는 만만찮은 함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갈등하는 케이, 팝』은 케이팝이라는 모순적인 용어가 지닌 딜레마에 대해 케이팝 팬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적확한 사례들을 통해 접근하고 있다. 그럼 케이팝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용어인가?      


“케이팝이라는 용어 자체는 Korean Popular Music의 준말이다(10-11쪽).” 이 용어가 딜레마적인 이유는 케이는 로컬을 의미하는 반면 팝이라는 용어는 글로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팝이라는 용어는 미국과 영국을 통해 대중화된 일련의 장르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문제는 케이팝이라고 불리기 전에 대한민국 대중음악은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영향에 의해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케이팝으로 불리기 이전에 한국대중음악은 팝의 영향을 지역적인 특수성을 기반으로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수용과정에서 독특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특수성이 해외시장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케이팝이라는 용어는 하나의 장르가 된다.      


“케이팝은 음악적 스타일에 대한 공유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는 브릿 팝보다는 스웨디시 팝이나 제이팝, 라틴 팝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들어진 지역, 음악 스타일, 그 외 다양한 요소를 통해 수용자들은 케이팝을 다른 음악들과 구분되는 하나의 독립된 음악 장르로 받아들이고 있다(12-13쪽).” 케이팝이 특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라틴 팝처럼 음악적 특수성이라기보다는 지역성 특수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역적 특수성이 갖는 대표적인 예로 한국말로 부른 노래를 케이팝이라고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BTS의 성공에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것은 BTS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된 음악들로 빌보드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럼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한국음악이 왜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을까? 기본적으로 뮤지션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규탁은 케이팝을 케이팝의 맹아기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후반부터 3시기로 구분하여 접근하고 있는데 2013년 이후에 등장한 3세대는 작사, 작곡, 편곡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무대에서의 퍼포먼스가 뛰어난 국내 아이돌들이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Z세대의 문화적 수용성을 꼽을 수 있다. 두 가지는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는데 Z세대는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글로벌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지 않는 세대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쿨하다고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획사들은 더 큰 매출이 나오는 글로벌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의식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뮤지션들은 글로벌 위주로 활동한다. 여기에서 긴장이 발생한다. 국내 팬들은 글로벌에 비중을 두는 접근 방식에 불만을 가지게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갖는 모순을 잘 설명해 준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 영향을 확보하게 된 케이팝은 글로벌화를 견지해야 하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것을 신경써야 하는 딜레마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역 음악이자 글로벌 음악으로서의 케이팝이 근본적으로 갖는 이중적인 속성으로 인해 케이팝은 ‘세계 속의 보편적인 팝 음악’을 지향하며 한국이라는 국가로부터 벗어나려는 탈국가화(de-nationalization) 움직임을 보이지만, 그것이 한국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지역 문화의 일종으로서 본국 및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한국의 것으로 재정의되는 재국가화(re-nationalization) 경향을 가진다. 이 두 흐름 사이의 융합과 갈등은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는 한 꾸준히 반복되는 문제일 것이다(127쪽).”     


케이팝이라는 용어가 갖는 모순적 속성은 앞으로도 다양한 고민의 지점들을 제기할 것이다. 케이팝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갈등하는 케이, 팝』은 케이팝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측면에서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익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잘 읽히는 책이지만 만만치 않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앞으로도 역동적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크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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