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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14. 2020

상실을 극복하게 해주는 매개물로서의 예술

대리언 리더. 『우리는 왜 우울할까』.

학부 은사이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자 영문학자이신 오민석 교수님께서 페북에서 창작 행위가 잊고 싶은 기억을 망각하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술은 과연 정신적인 아픔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대리언 리더는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는 왜 우울할까』는 애도와 멜랑콜리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적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약물을 기반으로 한 현대 정신의학의 접근 방식이 놓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울을 포괄적으로 정의할 경우 중요한 심리적 차이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 리더의 지적이다. 두 번째 주제는 예술이 애도와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첫 번째 문제의식에는 상대적으로 명확하게 설득된 반면, 두 번째 주제에 대해서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다. 나는 두 번째 주제에 훨씬 더 관심이 있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의 결함이 아니라 주제 자체의 복잡함과 내 지식의 빈곤함 때문일 것이다.     


슬픔, 애도, 멜랑콜리아와의 차이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세 가지 개념에 공통분모가 존재할 뿐 아니라 접근하는 시각에 따라 개념적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슬픔은 보다 포괄적인 범주이다. “슬픔은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애도는 이 슬픔을 처리하는 방식이다(33쪽).” 애도는 누군가를 상실했을 때 그 상실을 마주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문제는 극복의 의미이다. 대리언 리더는 애도는 극복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애도를 금기시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고 리더는 얘기한다. 또한, 현대 정신의학이 모든 정신질환을 특정 행위를 개선하기 위한 약물치료로 접근할 경우 애도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애도와 멜랑콜리아는 우울이라는 일반적 감정과 구분되어야 하는 개별적인 증상이라는 것. 또한, 이는 단순히 약물치료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리더는 애도를 사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적인 차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애도행위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공적인 애도행위를 목격하면서 사적인 애도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리더는 얘기한다.     


그럼 멜랑콜리아는 무엇인가? 이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인데 다음의 문장이 그나마도 이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프로이트는 애도는 사람은 무엇을 상실했는지 어느 정도 아는 반면, 멜랑콜리아 환자에게는 무엇을 상실했는지가 늘 분명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42쪽).”증상적으로 “멜랑콜리아는 뭔가를 상실하고 난 뒤에 자기 이미지가 심하게 바뀐 상태를 의미한다(43쪽).”     


이 책의 원제는 The new black: Mourning, melancholia and depression이다. 여기서 The new black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상의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상실이 대상이 비교적인 명확한 사람은 애도하는 행위가 가능하지만 정확한 상실의 대상을 모른 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이라면 그 공백에 접근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리더는 그 공백을 극복하기 위해 예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창작할 것을 권한다. 이 행위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수성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유용해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없었던 것은 다음 기회에 해소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은 리더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마친다.      


“예술은 우리가 슬픔에 접근할 수 있게 하려고 존재한다. 이는 파란만장한 인간 삶으로부터 어떻게 창조적인 작업이 나올 수 있는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능하다. 예술을 대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안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자기 밖으로 나가야 한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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