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맥락의 독서를 위하여

김인환, 「독서의 가치」,『타인의 자유』, 파주: 난다.

by 노창희

모든 인간은 현재를 산다. 미래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재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쉽다. “미래의 끝은 죽음이므로 현재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말은 결국 삶보다 죽음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되고 말 것이다(18쪽).” 하지만 현재라는 순간은 단독자로서 존재할 수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 현재를 잘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해 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딛고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의 과제를 수행하지만 그는 동시에 동시성과 완전성을 지닌 영원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현재는 영원과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18쪽).”


현재를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것 중 하나가 독서이다. 김인환은 먼저 책 읽는 행위를 무용하다고 규정하는 편견을 비판한다.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한 면이라면, 책 좋아하는 사람을 백면서생(白面書生)이니 책상물림이니 하고 조롱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한 면이다(20쪽).”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경험에 대한 과도한 가치 부여가 나은 몰이해라고 김인환은 지적한다.


“책을 경시하는 태도에는 책과 현실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들어 있다. 책의 내용은 유한하고 현실의 계기는 무한하기 때문에, 책은 현실이 아니며 현실이 될 수 없다. 책은 현실에 대하여 진술한 언어이다. 언어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책은 현실을 남김없이 드러낼 수 없다. 책벌레가 되지 말라는 말은 책만 읽지 말고 자연을 관찰하고 사회를 경험해야 한다는 권고이다. 현실은 현실에 대한 어떠한 표현보다도 더 크다. 그러나 경험이 독서보다 반드시 삶에 더 유효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데에 독서의 신비가 있다(20쪽).”


인간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이론이나 관습이 존재한다. 이론과 관습은 경험과 책을 통한 학습이 축적되어 정립된 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그렇게 습득된 지식을 현실에서 적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책은 비현실적 개념 장치로 현실적 자료들을 해석하려는 시도이다(21쪽).” 그렇다면 독서는 반드시 필요한 행위가 된다. 김인환은 허학이 아닌 실학을 지향하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허풍치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나 하는 짓은 보잘것없는 자를 소인이라고 하는데, 허학은 소인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우리의 독서는 마땅히 실학이 되어야 한다(24쪽).”


그럼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한 권 한 권의 책을 공들여 천천히 읽는 것이 독서의 유일한 방법이다. 천천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일 것이다. 책은 우리가 시간을 들인 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려준다(26-27쪽).”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김인환은 토막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책에 시간을 바치려면 무엇보다 먼저 토막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서재에 세 시간 이상 혼자 앉아 있을 수 있어야 책을 읽는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독서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27쪽).” 책은 공들여 틈틈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인환이 강조하는 것은 맥락의 독서이다. 맥락의 독서란 무엇인가? 책과 책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책과 책 사이의 맥락을 파악하면서 책을 읽을 때 의미를 창출 하는 독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의미는 책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책들과 책들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의 결을 파악하려면 깊이의 비전 대신에 옆으로 보는 비전을 따라가야 한다. 측면의 독서만이 맥락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30쪽).”


하지만 우리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어떤 책을 읽을지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 “선택을 통하지 않으면 맥락은 읽을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독서는 독자가 자기에게 부과하는 한계이며, 이러한 한계 안에서만 맥락의 독서가 가능하게 된다(33쪽).” 맥락의 독서는 항상 무엇인가를 남긴다.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는 우리는 독서를 마치게 되면 다시 새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만들게 된다. “맥락의 독서는 미완성의 독서이고, 중도에 있는 독서이고, 항상 중요한 무엇인가를 남겨놓은 잉여의 독서이다(30쪽).”


김인환은 올바른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균형감각을 강조한다. “올바른 독서는 책을 진리의 용기(容器)로 숭배하는 권위주의와 책을 정보의 창고로 이용하는 실용주의의 중간 어디쯤에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35쪽).” 때로 경외의 대상이 되어야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지만 경외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책을 실용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독서는 필요한가? 나는 김인환의 「독서의 가치」를 빌어 여전히 우리에게 독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온갖 잡다한 정보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현대의 속물들에 저항하여, 창조적 직관을 함양하는데 기여하는 독서야말로 올바른 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독서는 정직하고 관대한 생활의 한 부분이다(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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