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와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쓰기 철학
글쓰기와 영감의 관계에 관해서라면 다음의 문장 보다 유명한 문장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필립 로스, 『에브리맨』, 정영목 옮김) .” 『에브리맨』의 역자 정영목은 「옮긴이의 말」에서 이 문장이 어떤 화가가 한 말로 등장하지만 아마도 “필립 로스 자신이 충분히 공감하는 말, 나아가서 그 자신이 소설을 쓰는 태도를 대변하는 말이라는 느낌(189쪽)”이 든다고 얘기한다. 진실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필립 로스의 작품 다수를 번역한 정영목의 말이라면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필립 로스 같은 거장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겠지만 글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는 저 문장을 알게 된 이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며, 글쓰기에 임한다.
그런데 레이먼드 챈들러는 조금 다르게 얘기한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영감을 기다리는 편입니다(「챈들러 스타일」,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안현주 엮고 옮김, 55쪽).” 물론, 챈들러가 영감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56쪽).” 챈들러는 네 시간 동안 영감을 기다리면서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챈들러는 네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도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챈들러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한 명인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루틴을 지키는 작가로 유명하다. 어쩌면 하루키는 우리가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신화의 베일을 단호하게 벗겨버린 작가일 것이다. 작가는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창조적인 작품을 써내는 천재가 아니다. 작가는 성실한 노동의 결실로 작품을 생산해 내는 자이다. 그는 꾸준히 글을 쓰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필립 로스도 생전에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해왔다. 안타깝게도 챈들러는 알콜 중독을 극복하지 못했다(다행히 우리 나이로 72세에 사망했으니 요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 언급한 레이먼드 챈들러, 필립 로스, 무라카미 하루키 셋의 공통점은 모두 루틴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영감이라는 결코 갑자기 현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감은 루틴을 지켜가며 글을 위해 분투할 때 간신히 주어지는 것이다. 영감을 기다리건 기다리지 않건 루틴을 지켜가며 글을 써나갈 때 어렵게나마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챈들러와 로스의 말을 이렇게 종합해 볼 수 있을까? 글쓰기를 위해서는 꾸준히 루틴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 일단 일하러 가야 한다. 일하러 가서 영감이 오는 날은 감사한 날이다. 감사한 날이 아니라도 글을 쓰건 그렇지 않건 글을 생각해야 한다. 그 자체가 글을 위한 노동이리라. 영감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일을 하러 가야하는 것이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는 문장은 여전히 내게 금과옥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