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꾸는 사자의 언어로서의 시

오민석. 『굿모닝, 에브리원』. 뒷면의 시론에 관하여

by 노창희
생의 지도는 스스로 갈증이 되어 갈증을 견디는 낙타의 발자국들로 어지럽다.
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자들이 내뱉는 한숨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 정신에게 세계는 그 자체 ‘견딜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다. 세계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으며, 세계로부터 자신에게로 눈을 돌릴 때 주체는 자신의
내부 역시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지각(知覺)이란, 견딜 수 없는 주체가 견딜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다. 낙타에게 세계는
출구가 없는 사막이다. 낙타는 길 없는 사막을 그저 인내하고 걸을 뿐이다.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낙타가 갈증의 ‘끝’에 도달했을 때, 낙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내의 목록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낙타는 그것들이 ‘당연한(natural)’ 것이
아니라 ‘구성된(constructed)’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낙타는 인내의 사전에
각인된 목록들이 (사막의) 권력이 ‘만들어낸’ 담론들, 즉 공리(公理)와 규범들임을 눈치챈다. 그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먼 과거로부터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강제해 온 것임을 깨닫는 순간, 낙타는 사자로 변한다. 정신이 이렇게 낙타의
인내를 버리고 사자의 자유를 선택할 때, 규범과 공리의 감옥들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린다. 시는 이런 점에서 (모든 형태의) 규범과 공리를 의심하고 그것에 도전하며 ‘자유’를 꿈꾸는 사자의 언어이다. 사자의 정신은 오로지 세계의 복잡성을 인내하며 그것과 고통스럽게 분투한 존재에게만 주어진다.


오민석의 『굿모닝, 에브리원』을 읽고 있다. 위의 문단은 시집 뒷면에 실려 있는 오민석의 시론이다. 위의 문단에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으나 아래에 내 생각을 조금 보태 보았다. 쌍따옴표로 인용한 문장은 위에 인용한 오민석의 문장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생은 갈증이고 그 갈증은 우리를 번민에 빠지게 한다. 권여선의 『레몬』에서 살인사건으로 언니를 잃은 후 고통을 겪는 다언은 시를 쓰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고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반추한다. 고통을 겪는 인간이 시를 찾는 것은 “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자들이 내뱉는 한숨”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 한숨을 마음의 자양분으로 삼는데 그 자양분은 세상을 견디기 어려운 시인이 “견딜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본 결과물이므로 결코 분홍빛일 수는 없다. 세계는 무채색에 가깝고 그 무채색을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괴롭다. 라캉의 말을 빌리면 그리하여 속지 않는 자는 방황한다. 그래도 그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는 일보다 시를 경유하여 바라보는 일은 이 견디기 힘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견딜 만 하게 한다. 시를 통해 내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삶을 관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독자가 “출구가 없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낙타라면 세계는 대체 왜 모양인지에 대해 묻게 된다. 그리하여 시를 읽을 지경에 까지 처한 독자라면 이 세계가 잘못된 이유가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과오가 겹치고 겹쳐서 이렇게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오민석은 이를 “낙타는 그것들이 ‘당연한(natural)’ 것이 아니라 ‘구성된(constructed)’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고 말한다. 시를 읽는 독자가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 중 하나는 세계를 주어진 그대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배후를 의심하는 독자는 시인의 문장들에 담겨 있는 행간을 읽어 내느라 다시 고뇌한다. 하지만 시를 읽으며 방황하는 것은 생각 없이 사막을 헤매는 일과는 다르다. 진실을 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 위한 분투는 멈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시를 읽는 일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그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먼 과거로부터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강제해 온 것임을 깨닫는 순간, 낙타는 사자로 변한다. 정신이 이렇게 낙타의 인내를 버리고 사자의 자유를 선택할 때, 규범과 공리의 감옥들이 무너지는 굉음이 들린다.” 시를 읽는 일, 문학을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오민석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자의 정신’을 획득하는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오로지 세계의 복잡성을 인내하며 그것과 고통스레 분투한 존재에게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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