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별인사』.
『작별인사』는 인간이 만든 휴머노이드를 비롯한 인공지능이 결국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하여 인조인간으로 초래되는 디스토피아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를 묻는 서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작별인사』에서 독특한 부분은 인공지능과 인류와의 대결에서 인류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인공지능에게 길들여져 스스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인간세가 끝나게 된 것은 SF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 소멸해버렸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154쪽).”
『작별인사』는 최진수 박사가 만든 휴머노이드 철이가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체포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룬다. 『작별인사』에서는 대한민국이 미래에 통일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통일된 대한민국에서 평양과 같은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고는 인공지능 기반의 휴머노이드들로 인해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최진수 박사는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그 결과물이 철이다. 최진수 박사는 철이에게 인간이라고 얘기하지만 철이가 휴머노이드라는 것은 소설 초반부터 암시되고 있다. 체포되어 만난 선이와 민이와 탈출을 시도하지만 휴머노이드 민이는 죽고, 철이를 구하고 인간이 아닌 기계에 적대적인 최진수 박사로 인해 선이와도 헤어지게 된다.
『작별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 중 하나는 인간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이다. 기술적으로 의식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과연 인간의 정체성과 육신을 보존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인 문제 뿐 아니라 신체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를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신만이 보존된다고 해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영하의 작품에서 기억은 중요한 테마이다. 김영하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김영하는 연탄가스로 인해 유년시절의 기억 일부를 상실하였다. 『살인자의 기억법』,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 알츠하이머를 다룬 것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기억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데 그 기억이 온전히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고 지금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이 그 기억의 불완전성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작별인사』가 제기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질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기억의 불완전성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이 『작별인사』와 같은 작품을 구상하게 했을 것이리라. “침대 머리맡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침의 인간은 어제의 인간을 취조중인 것이다(「작가의 말」, 173쪽).” 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고,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적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질문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 것이다. 『작별인사』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김영하식 대답처럼 들린다. 물론, 이 대답은 완결형 일 수 없고, 작가는 이 질문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