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설터.『소설을 쓰고 싶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은 난감하다. 도무지 유용하지 않고, 즐기기 쉬운 일도 아니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별 고민 없이 ‘독서’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는 시간을 투자하고 독서하는 근육을 만들어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독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나의 입장이다. 작가의 작가라고 불리는 제임스 설터가 쓴 『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와 닿을 만한 문장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얇은 책이지만 사유는 얕지 않다. 물론, 설터의 문장이므로 한 문장 한 문장이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우선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설터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나에게는 독서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선 뭔가 빠진 게 있지요. 언급하는 말의 폭, 역사 감각, 공감 능력 같은 게 부족해요. 책은 패스워드지요(16쪽).”이 문장은 이성적으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수히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책을 통해서만 필요한 정보를 얻고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은 다소간 고답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독서를 통해 함양되는 감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르를 문학으로 국한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독서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감수성이 있다면 그 감수성이 곧 글쓰기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설터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소박한 작가와 성찰적인 작가의 구분을 인용한다. “프리드리히 실러의「소박한 문학과 성찰적인 문학에 관해서」라는 영향력 있는 논문에 영감을 받은 오르한 파무크는 작가를 소박한(naive) 작가와 성찰적인(sentimental) 작가, 두 부류로 구분했습니다. 파무크에 따르면 소박한 작가를 글이 샘처럼 자연스럽게 저절로 우러나오는 작가, 즉 자신이 어떻게 쓰는지 인식하지 않고서 글을 쏟아내는 작가를 뜻합니다. 파무크는 이러한 범주의 작가로 단테,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스턴, 괴테를 들고 있습니다. 반면 성찰적인 작가는 문체나 기법 등 여러 가지 문제들에 직면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머리가 둔한 학생들처럼 더 축복받는 작가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부류의 작가에는 톨스토이, 고골, 버지니아 울프, 토마스 만을 비롯하여 여타 대부분의 작가들이 포함될 것입니다(24쪽).”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성찰적인 작가들이고, 꼭 문학이 아니더라도 성찰적인 방식으로 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떤 측면에서 성찰적인 방식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글쓰기와 독서는 결코 즐거움만으로 수행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게 된다. 특히, 자신의 삶이 연료가 되는 소설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고 형식을 공부하기 위해 다른 작가의 작품 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무수히 읽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 된다. 그럼 왜 작가들은 이런 고된 행위를 지속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때때로 어떤 사람을 생각하며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존경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널리 알려지기 위해 글을 썼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진실할 것입니다. 결국은 그게 유일한 이유입니다. 결과는 그것과 거의 상관없습니다. 그 이유 중 어느 것도 강한 욕망을 불어넣지는 못합니다(45쪽).”
작가의 작가라고 불리는 설터는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 크게 인정받기를 갈망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긴 글을 쓰는 사람치고 이러한 욕구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극단적으로 비유해 보자면 설터는 필립 로스 같은 작가들 보다는 생전에 불행했고, 레이먼드 카버 같은 작가들보다는 생전에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 기간 건강을 유지하며 말년에는 상당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글쓰기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영속적인 순간들, 어떤 사람들 어떤 날들을 제외하곤 기록되지 않은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74쪽).”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삶과 기억은 휘발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런 것 같아요. 그것들에도 시간의 흔적이 어리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최신 상태가 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지요. 그것들은 시간 바깥으로 나가서 존재하거나 아니면 소멸됩니다. 문학은 이런식으로 진행됩니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드러내 보여준 다음, 점차 그 시대와 장소가 됩니다(75쪽).”
『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거장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한 책이다. 삶과 기억을 소멸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는 것이 글쓰기다. 그 글쓰기에 대한 설터의 태도는 경이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문학이 하는 일은 결국 어떻게 삶을 간직해 내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