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해 질 수 없다는 예감과 성장

송지현,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

by 노창희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언니가 자살을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은혜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진 언니는 다수의 취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무단으로 조퇴해도 꾸중을 듣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이 하는 칭찬이란 맏며느리감이라는 것이다. “언니는 ‘평범한 것’을 피해 소수의 취향을 선택했지만, 어쩐지 자신은 늘 ‘평범하다’는 말을 들었다(14쪽).”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에는 존 브라운이라는 뮤지션의 이야기가 나온다. 불행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짧은 기간 인기를 얻었다가 오티스 우드라는 청년에게 총살당한 뮤지션이다. 오티스 우드가 미국 시민들에게 각인된 이유는 오직 하나 존 브라운을 죽였다는 사실에 있다. 언니의 자살 기도와 존 브라운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보면 나는 언니가 “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어떤 존재감이 중요(31쪽)”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실패한 은혜의 자살기도와 함께 종말을 연상시키는 것은 나의 부모가 운영하고 있는 세탁소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 J와 매일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빵집에서 5백원 짜리 비스킷을 먹는다. 내가 언니와 다른 것은 언니와 같이 평범함에서 벗어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니가 왜 자살을 하려고 할까 J와 함께 고민하던 나는 결국 언니의 살해를 결심하지만 언니의 일기를 읽고는 계획을 철회한다. 언니가 바라던 것이 죽음 이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다면 언니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줄 가장 강력한 유품은 일기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언니의 일기는 너무 형편없어서 언니가 자신에게 살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언니가 세상에 족적을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내가 언니 살해 계획을 철회한 이유이다.


「선인장이 자라는 일요일들」을 지배하는 것은 물의 이미지다. 물만 잘 주면 죽지 않는 선인장처럼 우리는 어떻게든 성장한다. 문제는 성장의 방식이다. 성장의 과정에서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특별해 지고자 발버둥 치는 언니를 보면서 자신이 세탁의 운명과 같이 특별해 질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감한다. “만들어져 나와서, 축축한 채로 다른 옷들과 뒤엉키다가, 결국엔 건조되어 천장에 매달리는 것, 그것이 세탁의 운명이었다(29쪽).”


은혜는 자살 기도를 포기하는 대신 개명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어떠한 이름을 골라도 전국에 비슷한 이름은 있는 법이다. “언니는 매일 사람 찾기 사이트에 바꾸고 싶은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나 아무리 특이한 이름이어도 꼭 한 명은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 이름을 가진 경기도에 사는 스무 살의 여자나, 부산에 사는 마흔세 살의 남자를 원망하며 언니는 창을 닫았다(29쪽).” 은혜는 이름을 바꾸더라도 특별해 지기 어려울 것이다.


후반부에 나가 우연히 발견하는 선인장은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선인장의 특성은 물만 주면 잘 자란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해지기는 어렵지만 비를 맞고 축축하게 젖었다가 바삭하고 건조해 지는 세탁물처럼 정형화된 방식으로 마모되는 방식으로 성장할 수는 있다. “어쩌면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삭하고 건조해지는 것 말이야(34쪽).”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운 암울한 젋은 세대에게 특별 해 질 수 없는 미래를 예감하는 것은 일종의 성장일 수도 있다. “세탁의 성장과 반죽의 성장에 대해. 축축하게 젖어버리는 어느 한 시기에 대해(34쪽).” 이 성장을 성장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허탈하고 인정하지 않기에는 그 어떤 대안을 말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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