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지만 중요한 연대의 가능성을 살피는 일

장류진, 「연수」

by 노창희

『일의 기쁨과 슬픔』은 첫 소설집으로는 보기 드물게 성공한 소설집이다.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평가도 호의적이었지만 대중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장류진의 작품들이 대중적 관심을 모으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당대의 한국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불행히도 많지 않고 그 와중에 관심을 모은 작품, 더욱이 신인 작가가 발표한 작품이 대중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중요하다.


나는 장류진의 작품들이 당대 한국의 첨예한 문제를 공감할 수 있게 그려내는 것이 장류진의 소설들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작품이 갖는 비평적 위상과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것 두 가지 모두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 노트 「흘러들어온, 그리고 이어가는」을 읽기 전에 「연수」를 읽고 생각 난 작품은 당연하게도 「도움의 손길」이었다. 작가 노트에서 장류진은 「연수」와 「도움의 손길」이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얘기한다.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이 소설은 지난가을에 발표한 「도움의 손길」이라는 소설과 어쩐 한 쌍처럼 여겨진다(288쪽).”


장류진의 단편들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갈등의 양상 중 하나는 세대 간의 갈등이다. 「연수」와 「도움의 손길」이 가지고 있는 구도는 돈을 지불하는 측이 젊은 세대이고(소위 얘기하는 ‘갑’이 된다), 젊은 층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중장년층이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중장년층이 ‘을’이 된다). 장류진의 소설에 등장한 젊은 층들을 굳이 계급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중산층 이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고 「연수」에 등장하는 주연은 그 중에서도 사회적 위치가 가장 높다. 「연수」와 「도움의 손길」이 갖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돈을 지불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주인공들이 중장년층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딩크족이거나 비혼주의자라는 것이다.

‘나이’라는 변수가 관계의 형성에 있어 아직까지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한국 사회에서 돈을 지불하는 측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측의 연령 역전 현상은 관계를 미묘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장류진의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이 관계의 미묘함은 어쩌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대한민국에서 큰 사회적 문제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연수」의 주인공 주연은 명문대학을 나와 CPA에 합격한 모범생으로 삶에 있어 별다른 실패를 겪은 적이 없는 인물이다(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으로는 부적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소설은 실패를 겪는 사람들의 장르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주연도 실패에 대한 강력한 추억이 존재하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운전이다. 면허를 딴지 9년 만에 주연은 운전에 도전하게 된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대중교통으로는 가기 애매한 클라이언트의 회사로 파견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혼주의자인 주연이 운전 강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창구로 맘카페를 활용하는 것은 시사적이다. 생활 영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맘카페만큼 적절한 커뮤니티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은 40대에 아이가 없는 남성인 나조차도 수긍이 간다. 주연은 맘카페에서 이질감을 느끼기보다는 맘카페 여성들의 고충을 보면서 자신이 비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느낀다. 이 소설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주연이 맘카페를 활용하는 방식은 여전히 대한민국 30대, 40대 여성들이 정보를 얻거나 정서적 연대감을 느끼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영역이 비슷한 연배의 기혼자들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맥락이 비혼주의 여성들에게 주는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정황은 장류진 작품의 소재가 될만하다고 생각된다.


주연은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결혼정보 회사에 돈을 지불한 엄마와 냉전 중이다. 자신 보다는 엄마와 연배가 비슷한 강사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는 것에 주연이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연수」가 「도움의 손길」과 다른 부분은 세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강사와 주연이 서로 합리적으로 연대하는 것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주연은 세대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강사가 자신이 운전할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고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추가 연수를 요청하는 주연의 선의를 강사는 거부한다. 이미 주연은 자신의 능력으로 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연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연수」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이 환기시키는 사회적 갈등의 지점이 개선될 것이라는 식의 뉘앙스는 느낄 수 없다. 구조적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들이 잠시라도 연대에 성공한 이유는 서로에게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서로 줄 것이 있는 관계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선의가 존재한다면 희미하게나마 연대의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장류진이 또 어떠한 소재를 소설로 쓸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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