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가항력과 불가해성에 관한 고찰

이승우.『사랑의 생애』.

by 노창희

좋은 산문을 종종 시에 비유하곤 한다. 나는 어떤 좋은 소설은 산문화 되면서 철학으로 도약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승우의 소설만큼 이런 성격을 갖는 소설도 드물 것이다. 『사랑의 생애』의 첫 장 「사랑의 생애」는 그 자체가 독립된 에세이로 읽히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이승우의 관점대로 사랑을 생각한다면 사랑을 하는 사람은 무기력한 존재다. 그리고 과연 ‘사랑을 하는’이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사랑의 생애」, 9쪽).” 내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므로 내가 사랑을 한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면에서 불가항력적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나 자신의 주체적인 결정을 통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승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목은,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일 뿐이고, 사랑이 그 안에서 제 목숨을 이어간다는 뜻으로 ‘사랑의 생애’라고 했다(「작가의 말」, 5쪽).” 사랑이 내 속에서 살다가 스스로 빠져 나가는 것이다.


『사랑의 생애』는 자신에게 구애한 적이 있던 선희를 2년 만에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형배의 얘기로 출발한다. 하지만 선희는 그 사이 영석을 만나 연애를 하고 있다. 형배는 자신보다 매력이 없어 보이는 영석이 선희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가 선희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포기한다.


『사랑의 생애』에서 사랑에 들린 이들의 행동은 하나 같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선희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2년 만에 선희에게 사랑을 느끼는 형배, 영석의 약함에 사랑을 느끼는 선희, 다른 여자 때문에 자신을 버린 남편의 임종을 지키는 형배의 어머니까지 그 누구의 사랑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이승우는 아마도 이렇게 이해 받을 수 없는 사랑의 방식을 통해 사랑의 불가해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과거에 구해한 적이 있던 선희를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나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형배는 사랑에 대해 무지한 자다. 형배만 사랑에 대해 무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에 대해 무지하다. 자신의 약함에 이끌린 선희를 사랑하게 된 영석은 사랑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무력하다. 하지만 영석이 형배와 다른 것은 사랑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형배는 선희의 구애를 자신이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뿌리치는데 『사랑의 생애』에 따르면 인간은 사랑을 자격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다.


『사랑의 생애』에 드러난 이승우의 시각에서 보자면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사랑이 인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원인을 인간 속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때로 오만할 수도 있다. 그러면 ‘사랑’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랑의 생애』를 덮고 나면 사랑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 지는 것 외에는 인간이 사랑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인간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기력한 존재일까? 여기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사랑’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이렇게까지 괄호 치는 소설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승우라는 작가가 쓴 소설을 읽는 순간은 항상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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