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전 스물아홉의 강

권여선.「분홍 리본의 시절」

by 노창희

서른이라는 나이는 특별한가? 삶에 대해 권여선 만큼 민감한 인식을 가진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서른이 특별한 것은 모든 숫자가 특별하다는 바로 그 평범한 진리에서일 따름이었다(61쪽).” 하지만 서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면 권여선이 저런 식의 문장으로 서른을 묘사했을 리 없다는 것을 권여선의 독자들은 알고 있다. 「분홍 리본의 시절」은 연희가 서른을 앞두고 겪는 철수와의 실패한 연애 이야기이다. 이 연애가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연희에게 자신이 스물아홉 때 완전한 이별을 통보했던 철수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연희는 스물아홉 늦봄에서 서른살 늦봄까지 일 년을 신도시의 오피스텔에서 지냈다. 연희는 자신이 살던 오피스텔에서 오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에 매일 가는데 거기서 철수 부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이 우연이 연희의 삶에 있어서 일종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서른 즈음을 파국에 가깝게 만든다. 우연은 권여선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화두다. 우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우연이 초래한 어떠한 국면은 어쩔 수 없이 이 우연이라는 것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우연에 대해서는 후회해봐야 부질없지만 부질없다고 해서 후회가 안 생기는 건 아니다(61쪽).”

연희의 스물아홉은 그녀들로 인해서 경이로워진다. 물론, 그녀들과 관계를 맺게 한 장본인이 철수라는 점에서 원죄는 철수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듯 하는 일 없이 만나는 사람 없이 빤하고 투명한 삶을 살았는데도 내 서른 즈음이 그녀들과의 만남을 피하지 못했다는 건 차라리 경이롭다. 그녀들 나의 그녀들(45쪽).” 여기서 그녀들이란 철수의 아내와 철수의 아이를 지워야 했던 수림을 의미한다.

‘연희’는 왜 선배 와이프가 해준 생선 요리에 경이로움을 느꼈는가. 혼자서는 생선 요리를 해먹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선 요리를 해먹는 선배네 가정은 좋아하는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야 유지될 만큼 위태롭고 위선으로 찌들어 있는 가정이다. “중산층의 표지는 육류를 즐기지 않는 데 있다기보다 육류를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데 있는 모양이었다(50쪽).” 그 경이로움에 이끌린 나는 결국 선을 넘고 만다(물론, 소설에서 명시적으로 이 의심을 해소할 수 없다.). 그래서 나의 서른은 경이로울 수밖에 없도록 처참해진다. 한 가지 사소한 궁금증은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른인데 그래서 개츠비를 등장시킨 것일까? 권여선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법하다. “그들과 함께 술을 먹지 않는 날이면 나는 10층 오피스텔 창가에 앉아 길 건너편 그들 아파트의 보도를 비추는 노란 불빛과 복도로 면한 조그만 직사각형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흰 형광등 불빛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물론 나는 개츠비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50쪽).”

철수의 소개로 수림과 함께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술을 마시던 날 연희는 수림이 철수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로써 철수와의 연애로써 지탱되던 연희의 스물아홉은 종말을 고한다. 이제 할 일은 수림이 술을 마시면서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 시집을 분홍 리본으로 묶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 뿐이다. 그리하여“협소하고 난잡한 내 영혼의 은유 같은 오피스텔(72쪽)”에서 벗어나게 된다. 철수의 아내는 연희에게 찾아와 철수와 이혼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연희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하지만 다행히 철수 부부는 이혼하지 않았음을 연희는 이후에 알게 된다.

서른 살은 경이로운가? 아니 삶은 경이로운가? 문제는 경이로운 순간을 위해서 살아야 하느냐 아니면 경이로운 순간을 피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느냐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비교적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 경이로운 순간을 예비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게 무력한 삶이다. 이 무력한 삶을 이토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작가의 독자로서 산다는 것 역시 경이로운 일일까? 경이로움을 예비할 수도 경이로움을 피할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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